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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

알타리도사 작성일 25.06.21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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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내가 배속된 부대는 한강 하류에 위치해 있었고, 강 건너는 북한이었다. 전방 지역의 특성상 우리 부대는 다른 부대와 1년 단위로 교대하며 초소 근무를 섰다. 야간엔 두 개의 초소를 2인 1조로 나눠 근무했고, 달빛조차 사라지는 암흑 같은 날엔 ‘증가초소’라 불리는 외진 곳까지 지켜야 했다.

 

나는 원래 그 부대 소속이 아니었다. 외부 교육을 받고 한 달 일찍 파견된 터라, 중간에 끼어든 느낌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낯설지만 금세 익숙해지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하늘엔 달도 없었고, 어둠은 칠흑처럼 짙었다. 나는 처음으로 증가초소 근무에 배정되었다. 판초우의를 입고 병기와 캔통을 든 채, 선임과 함께 초소에 도착했다.

 

초소 안은 눅눅하고 축축했다. 비바람은 습기를 더해 주위를 무겁게 감쌌다. 우리는 차라리 바깥이 낫다며 판초우의 안에 몸을 숨긴 채 근무를 시작했다.

 

선임은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걸어왔다. 판초우의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으으… 아아… 하아…’

 

바로 귀 옆에서, 누군가 숨을 불어넣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확연히 입김이 느껴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그러나 선임은 여전히 내게 말을 걸고 있었고, 내 행동이 이상했는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 니네 부대는 그렇게 개념 없이 행동해도 안 쳐맞냐? 똑바로 서 있어.”

 

나는 당황을 감추며 “똑바로 하겠습니다”만 되뇌었다. 그러나 그 입김은 곧 다시 느껴졌다. 목소리가 섞인 숨소리같은 입김.

그 느낌이 두 번, 세 번.

 

결국 견디다 못해 선임에게 물었다.

 

“전방에는 귀신초소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여기가 

귀신초소인지 궁금합니다.”

 

선임은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진짜 귀신 초소는 증가초소 너머,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철책 바깥의 폐쇄 초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귀신 초소에 얽힌 괴담을 들려주었다. 나는 ‘괜한 긴장 때문에 착각했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래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때, 선임이 무심히 내뱉었다.

 

“아! 맞다. 예전에 어떤 선임이 그랬지… 여기도 귀에다 바람 부는 귀신 나온다고 했었다.”

 

순간, 내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훅 치밀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판초우의에 철모까지까지 깊게 뒤집어쓴 상태였다는 걸.

 

그 말은, 외부의 바람이 내 귀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또렷하게, 입김을 느꼈다.

 

그 후로도 입김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나는 끝내 선임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귀신… 지금 제옆에 있는것 같습니다”

 

선임은 처음엔 날 비웃었다.

 

“기합 빠져 가지고 이빨 까냐?”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 얼굴에 떠오른 창백함과 떨림을 본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이후, 귀에 닿는 그 입김의 감각은 한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습한 밤이 되면,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그날의 그 숨소리와 입김이 다시 귓가에 맴돈다.

 

가끔은 지금도 문득 생각한다.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정말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 아직도 떠도는 무언가가,

그날 밤, 외로운 초소에서 나에게 인사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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