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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나도 존잘남이 되어보자-2

진짜킹카 작성일 25.08.11 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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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깁니다.

 

2부

 

 

다시 호프집 들어갈 때, 내 얼굴을 본 알바녀는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로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이내 시선을 밑으로 피하며 주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저 앞에 앉아 있던 동훈이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고, 몇 걸음 떼었을 때 또다시 휴대폰벨소리가 울렸다.

 

“야! 왜 갑자기 전화를 끊고 지이랄이야!”

 

“그래도 내가 오빤데 말 좀 예쁘게 하면 안 되나?”

 

앞에 있던 동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친이야?”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훈이는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다시 나가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전화기를 귀에 대고 다시 호프집 밖으로 나갔다.  

 

평소에 잘하지 않던 내 소심한 반항에 채린은 또다시 침묵이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녀는 평소처럼 짜증을 섞어 큰소리로 말했다.

 

“정말 오늘 따라 왜이래!”

 

“왜는 무슨? 오늘 남자 친구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난 사람에게 이 정도면 양반 아니가?”

 

비꼬듯 쏘아붙이는 말을 들은 채린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런 사이가 아니란 건 눈치 챘잖아…….”

 

그녀의 낮은 목소리에 마음이 또 약해졌지만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내가 항상 네게 숙이고 들어갔고, 헤어진다는 무기로 나를 협박했었지. 이제는 진짜 끝내자.‘

 

채린의 낮은 음성이 덤덤하게 들려왔고, 내 생각이 너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랑 만나는 것이 못마땅하면 우리 진짜 헤어질까? 진짜 그래줄까?”

 

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해주었다.

 

“전화상으로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 나 이제 너랑 만나는 거 너무 지친다. 채린아.”

 

“오빠 오늘 도대체 왜이래?? 가방 사달라고 해서 그러는 거야? 진짜로?”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그냥 그 동안 내가 너한테 너무 숨막혔나보다.”

 

서로 심각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중, 채린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갑자기 비웃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디서 연기를 하고 있어. 그렇게 분위기 잡으면 내가 오빠 잘못했어. 이럴 줄 알았어? 진짜 나니깐 오빠를 만나 주는 거야. 이 뚱땡아.”

 

고작 자존심 때문에 나를 상처주려는 그녀의 말을 그저 덤덤히 받아들였다.

 

“못 믿겠지만 네가 억지 부릴 때 나 헌팅 당했어. 그런데도 너니깐 나 만나 주는 거라고 말 할 수 있겠어?”

 

휴대폰 너머에서 채린의 웃음소리가 숨넘어갈 듯 아주 크게 들렸다.  

 

한바탕 크게 비웃은 채린은 여전히 웃음을 섞어 말했다.  

 

“뻥 치시네! 그럼 함 바꿔봐! 왜? 못 바꿔주겠지? 당연히 오빠가 쇼하는 거니까. 요즘 어디서 못된 것만 처 배워서는. 그 동훈인가 뭔가 그 오빠가 시키든?”

 

“아니, 진짠데? 연락처만 받고 가던데?”

 

“거짓말하고 있네. 내가 오빠를 2년 만났다.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럼 그 2년 동안 날 사랑한다고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은 있었니?”

 

“아! 진짜 오늘 왜 이렇게 심각한 말만해!”

 

“난 지금 진짜로 모르겠어. 너를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니면 네 말처럼 접어야 할지…….”

 

“오빠야! 자꾸 그러면 나 진짜 화낸다! 당장 여기로 뛰어와! 나 술값 없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도 술값을 요구하는 그녀의 말은 충격이었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미련을 털어버리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래, 이젠 진짜 안녕이다. 2년 동안 힘들었지만 그래도 외롭게 하지 않은 것은 고마웠다.’

 

그렇게 혼자만의 이별을 하고 다시 호프집으로 들어가니 조금 전 그 알바녀와 또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던 그 옆에 다른 알바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소파 자리로 돌아가 친구 맞은편에 앉으니 친구가 할 말 있다는 듯 손짓을 했고 허리를 굽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무슨 비밀 얘기가 있다고 이리 은밀하게 부르냐?”

 

“저기 보이는 여자애가 나한테 관심 있나봐. 아까부터 계속 날 쳐다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연락처를 받아간 여종업원이 우리 테이블로 시선을 두고 있었고 또 눈이 마주쳤다.

 

오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아니야 날 보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육중한 외모에 당연히 믿지 않을 것 같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가 보네.”  

 

심난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르게 동훈은 여종업원에게 관심이 있는 듯 종종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간만에 만난 친구와 그 동안 밀린 얘기를 했다.

 

회사에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임찬정이 날 못 알아본다는 둥, 회사 후배 보람이에게 꽂혀 정신을 못 차린다는 등의 얘기를 하다 대화가 끊겼다.

 

잠시 정적이 흐를 때 잔잔한 음악이 들려오자 채린과의 통화가 떠올랐다.  

 

답답한 마음에 맥주 한 컵을 그대로 들이키자 그 모습을 본 동훈이 엄지를 내밀며 말했다.

 

“와! 건배도 안하고 맥주를 그대로 목구멍에 바로 꽂네. 나도 이 기술 배워야 하는데. 근데 쟤 귀엽지 않나? 형아가 꼬셔줄까?”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가 30살이 넘은 내게 진짜 관심이 있다는 것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왜 내 연락처를 받아갔을까. 저 여자애도 내가 호구인 거 알고 그러나?’

 

혼자만의 이별에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였고, 건배하면서 계속 술을 마시다 보니 제법 취해버렸다.

 

“승훈아, 괜찮냐? 너 눈 풀렸어.”

 

“풀렸는지는 모르겠고. 너 아까 여자 소개시켜준다며? 착한 건 필요 없고 가슴 튼튼하고 방광 건강한 여자로 소개해줘.”

 

“역시 취향이 독특해. 방광 건강도 이해가 안 가는데 가슴 튼튼은 무슨? 오줌 잘 싸고 근육질 가슴 해달라는 거야? 혹시 예쁜 여자보다 잘 생긴 여자에게 끌리는 그런 성향이었냐?”

 

친구의 농담에 한참을 웃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보여 혹시나 싶어 전원을 켜봤다.

 

역시나 연속으로 문자 알림음이 울리며 제법 많은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니가 감히 내 전화를 끊어!]

 

[이제 너랑 나랑 끝이야 연락하지 마!]

 

[지금 전화로 사과하고 우리 집 앞에 와서 다시 사과하면 용서해줄게!]

 

[야! 이 새끼야 전화 안 받나?]

 

존칭이 사라지고 욕이 난무하는 문자를 받고 여전히 연애 갑질을 하는 그녀가 늘 내게 얘기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오빠가 어디 가서 나 같은 여자를 만나겠냐며 세뇌하려는 말들로 항상 날 길들였었다.

 

이젠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 눈앞에 여럿 문자를 보며 다짐을 했다.

 

 ‘그래 헤어지자.’

 

문자를 확인하고 어두오진 내 표정을 친구가 건너다보며 어떤 내용인지 알겠다는 듯 위로하려 술을 연거푸 권했다.

 

호프집 안에 들려오는 애잔한 노래들이 귓가에서 멀어지고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앞에 앉은 친구도 많이 취한 듯 보였다.  

 

술값을 계산하고 화장실 간다는 친구가 한동안 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비틀거리며 호프집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긴 한숨을 내뿜을 때, 뒤에서 어느새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부축을 해주었다.

 

속상한 마음에 과음을 해서일까, 너무 어지러워 눈을 감고 있었고 그런 상황의 친구의 부축하는 품이 너무나 따스했다.

 

 ‘내가 친구의 품을 이리 따스하게 느끼다니 술이 이리 위험하구나. 이렇게 성 정체성을 잃어가다니……. 엥? 근데 진짜 여자 품속 같은데?’

 

오른팔을 친구의 목에 감고 있었는데 손바닥에서 말캉말캉한 떡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친구의 가슴을 보니 봉긋한 것이었다.

 

 ‘어라? 친구가 왜 이리 가슴이 나왔지? 마치 A컵에 가슴이 튼튼할 거 같아.’

 

고개를 들어 부축해 준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니 조금 전 술집에서 봤던 그 여 종업원이었다.

 

많이 당황해 그녀를 보며 지금 무슨 상황인가 판단하려는 중에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많이 취하셨네요.”

 

다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취해서 일까, 너무 예쁘게만 보였다.

 

“아..아뇨, 마알,,짜,,앙 해요. 근데요. 그냥 하는 마리 아니구요. 많이 예쁘세요.”

 

“오늘은 안 예쁠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나봐요.”

 

농담으로 받아주는 그녀를 보며 홀린 듯 같이 웃었다.  

 

계속 안겨있으면 안될 것 같아 그녀의 품을 벗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말라는 듯이 더 세게 나를 안았다.

 

말짱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혀가 꼬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모습에 그녀는 또 빙긋 웃어주었다.

 

“저 지금 퇴근 시간이라서 나왔는데 너무 취하신 것 같아서 그냥 갈 수가 없네요.”

 

여전히 부축을 받은 채 앞으로 몇 걸음 걸으며 주위로 내 친구가 있는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제 친구는요? 보셨어요?”

 

“10분 전에 술값 계산하고 택시 타고 갔어요.”

 

“아, 날 버리고 먼저 갔구나. 나쁜 놈!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취했다고 업어달라거나 대소변 못 가리고 그런 거 전혀 없답니다.”

 

그녀는 입을 막고 웃은 후, 풀려 버린 내 눈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오빠 집이 어디예요?”

 

“성당동이라고 아세요? 거기 동네에요.”

 

“아, 아직도 거기 빌라에 혼자 사시는 거예요?”

 

“네, 글쵸. 거기 살죠. 엥? 네?”

 

그녀의 말에 엉겁결에 대답하고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아는 듯 했고 순식간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제가 성당동에 혼자 사는 거 어떻게 아셨죠?”  

 

그녀는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을 보며 대답을 기다리던 중에 우리 앞으로 택시 한 대가 섰다.

 

부랴부랴 택시 뒷좌석에 밀어 넣고는 안도하는 표정에 웃음을 섞어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락드릴게요.”

 

“저 차를 가져와서 대리를 불러야 하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녀는 택시 문을 닫아버렸고 기사는 중간에 끊긴 내 말을 들었는지 내릴까 싶어 바로 출발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조금 전, 번호를 주고받았다면 내가 연락해도 됐었다.

 

하지만 그녀만이 내 번호를 알고 있기에 연락이 올 때까지 그 궁금함을 계속 안고가야 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부터 돌아오는 토요일까지 채린에게도 연락이 없었고, 호프집에서 의문투성이 그녀 역시 연락이 없었다.

 

여종업과의 짧고도 짧은 인연은 답답했던 내 인생에서 즐거운 깜짝 이벤트라 생각했고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던 중이었다.

 

혼자만의 자유로운 주말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려 늦잠도 자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려도 시간은 더디게 지나갔다.

 

휴대폰을 충전시키며 저녁 준비를 하려는 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번호를 보니 생소한 번호가 찍혀있었다.

 

“여보세요?”

 

“그 때 잘 들어 가셨나요?”

 

기억에서 사라지려 하던 호프집 그녀였다.  

 

목소리를 들이니 스치듯 만졌던 가슴의 촉감도 손에 느껴지고 사랑스럽게 나를 보던 그 눈빛도 생각났다.

 

“내 덕분에 잘 들어 왔어요.”

 

“그 때 많이 취하신 것 같던데…….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나를 걱정해주는 나긋한 말들을 들려오자 진짜 이여자애가 내게 관심이 있어서 이러는지 궁금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연락을 드렸어요. 혹시 제 전화 안 기다린 건 아니시죠?”

 

“네, 조금. 아니 많이 기다렸어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제가 성당동에 혼자 사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시간 되시면 만나서 얘기해 드릴게요. 2시간 후에 시간 되세요?”

 

“네?”

 

여전히 다정한 투로 만나자고 하는 말에 당황했고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오늘 만나서 말씀 드릴게요. 나오시면 후회 안할 거예요.”

 

얼떨결에 그녀와 성서에 있는 대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혹시 술을 마실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발했다.

 

시간을 맞춰서 나간다는 것이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학교 앞 번화가 벤치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주위를 살피던 중에 채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채린은 며칠 사이에 화가 누그러졌는지 장난스럽게 말했다.

 

“반성 많이 했어? 반성 다했으면 전화를 해야지. 전화도 없고 진짜로 이제 나 안 만나려고?”

 

“네가 전화 하지 말라며?”

 

시큰둥한 목소리에 채린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오빠! 여자가 그렇게 말하면 남자가 풀어주고 그러는 게 기본 아니가?”

 

통화중에 저 앞에 호프집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고 날 발견하고는 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 내가 다시 전화할게.”

 

“야! 야! 끊지 말라고.”

 

호프집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채린과의 통화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길어질 것 같아 전화를 끊었다.

 

내 앞으로 다가와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녀에게 나 역시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에휴, 힘들엉. 잘 보이려고 힐 신었는데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아요. 걷는 것두 어색하구.”

 

그녀는 콧소리를 내며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고 가방을 뒤적이다 바나나우유를 2개를 꺼냈다.

 

다문 입술을 씰룩거리며 미안한 표정을 귀엽게 지어보이던 그녀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제가 늦었죠? 이건 늦어서 뇌물이에요.”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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