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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존잘남이 되어보자-5

진짜킹카 작성일 25.08.22 11: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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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입맞춤에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래, 성인끼리 술 한 잔 더 하자. 그러고 보니 오빠가 너 술도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네?”

“오빠랑 같이 있으니깐 아니 오빠랑 같이 술 마시니깐 너무 좋아요.”

“너두 어릴 때처럼 말 편히 해.”

“웅, 오빠.”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님 술 마실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설현이는 자제를 하지 못하고 주는 대로 다 받아마셨다.

취한 듯 보이는 설현에게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내며 술보다 대화를 하려했다.

어릴 때 이야기를 한참을 주고받으며 같이 웃고 맞장구 쳐주며 이야기하던 중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 어떻게 딱 설현이가 그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을까? 그것도 진짜 오랜만에 간 호프집이었는데?”

 

설현이는 연분홍빛으로 변한 얼굴로 귀엽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아님 인연이었을까요? 알아맞혀보세요.”

 

술버릇이라고 하기엔 너무 귀여운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는 중에 설현은 말을 이었다.

 

“사실 동훈이 오빠한테 오빠가 연락 오면 전화 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 호프집에 급하게 가서 잠시 아르바이트 하는 척 했던 거구.”

“아! 그래서 그때 동훈이가 1시간만 있다가 온다고 했구나. 근데 거기서 아르바이트 시켜주더나?”

“거기 예전에 언니랑 몇 번 간 적이 있어서 부탁을 하니깐 공짜 알바 쓴다고 좋아하던데? 저녁 한 타임 하고 나왔지만 일 잘한다고 더 하라고 그러더라구. 나 완전 고급인력이야, 오빠. 히히.”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술을 더 마시다보니 설현이가 너무 취해있었다.

 

 ‘설현이는 진짜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는구나. 날 맞춰주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마신건가?’

 

걱정이 되어 눈이 풀려있는 설현이를 일으켰다.

 

“설현아 많이 취했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네…….”

 

비틀거리는 설현이를 한 팔로 안은 채로 술집 문을 열었고 설현이가 앞으로 넘어지려했다.

화들짝 놀라 뒤에서 안았는데 의도치 않게 백허그의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내 양손이 설현이의 가슴에 닿았지만 손을 급하게 떼며 모른 척 했다.

 

“괜찮아?”

“아뇨……. 안 괜찮아요.”

 

설현이는 뒤에 서 있는 내게 돌아서서 안기며 여전히 혀가 꼬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오빠 나두 성당동에 사는데…….”

“성당동? 같은 동네로 이사왔네?”

 

도로가에서 택시를 잡고 성당동으로 가는 길에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설현이 말했다.

 

“진짜 우연이라도 오빠랑 볼 수 있을까 봐. 그리고 학교도 가깝고 해서…….”

“그래서 이사했다고? 너 이제 24살이면 대학교 졸업하지 않았어?”

“졸업했어야했는데 예뻐지는 기간이 1년이 넘게 걸렸어.”

“성형 말하는 거야?”

 

부끄러운 듯 내 팔을 부여잡고 깊게 안기면서 말했다.

 

“오빠도 참. 그냥 예뻐지는 기간이라고 해. 그게 더 듣기 좋아.”

 

택시에서 내려도 여전히 비틀거리는 설현이를 등을 받치며 부축을 하자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어릴 때처럼 집까지 업어주시면 안될까요? 여기서 안 멀어요.”

“업어 달라고?”

“나 보기보다 가벼워, 오빠.”

 

가볍지 않아 보였고 5분만 걸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기에 앉아서 등을 내밀었다.

 

“그래, 업혀.”

 

설현은 앞으로 털썩 쓰러지듯 업혔고 제법 무거웠다.

업힐 때 벗은 하이힐을 내게 건네주고 내 목을 양손으로 감싸며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살며시 말했다.

 

“오빠 나 가볍지? 히히. 이러니깐 어릴 때 생각나네. 한 번씩 오빠가 업어줬었는데.”

“그땐 내가 세상물정을 몰랐나 보다. 진정 네가 가볍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게 가벼운 거면 도대체 무거운 기준이 뭔데?”

 

등 뒤에서 내말을 들은 설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진짜 나 무거워?”

 

한손엔 하이힐 한 쌍을 뭉쳐들고 몇 걸음 걷다 일부러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 응……. 가볍네. 네가 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꾸 업혀있는 설현이는 미끄러지듯 내려와서 엉덩이를 잡고 다시 등 위로 밀쳐 고쳐 업었다.

 

“지인짜 가볍네, 가벼워. 에구, 힘들어.”

“치, 오빠 말하는 게 너무 얄미워.”

“사실 가볍진 않아. 살려줘.”

 

웃으면서 장난치는 것이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다가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업혀 있는 중에 내 등에 가만히 뺨을 대었고 묘한 느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꿈꾸는 거 같아, 오빠. 지금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엄청 크게 들렸다.

 

“집에 계란도 있고 대파도 있고…….”

 

자꾸만 취한 중에 헛소리하는 것 같아 대꾸도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나보고 라면 잘 끓인다고 칭찬하던데. 오빠,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육성으로 빵 터져버렸고 웃음소리가 가라앉을 때쯤 또다시 말했다.

 

“아까 통화 했던 사람 애인이지……?”

“응.”

“앞으로 저 만나실 거예요? 진짜로?”

“글쎄.”

“오빠가 진짜로 내 오빠였으면 좋겠다.”

“나 친오빠처럼 생각한다며?”

“그런 오빠 말고 좋아할 수 있는 오빠.”

 

술버릇인지 반말과 존댓말을 현란하게 섞어가며 말하던 설현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고 설현이 가르쳐준 위치에 거의 다 왔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어둑해진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설현을 업은 채로 천천히 걸어갈수록 채린의 모습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채린은 진짜로 우리 동네로 온 것이었다.

 

 ‘어? 우리 집은 뒤쪽인데 채린이가 왜 저 여기에 있을까?’

 

채린은 술집에서 통화 후 나를 찾는다고 이 동네에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나를 발견 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설현이를 업고 있는 날 발견하고는 어두워서 내가 맞는지 아닌지 다시금 확인을 하려고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야! 지금 뭐하는 거야!”

 

업혀있는 설현이를 보고 화가 폭발했는지 조용한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설현이는 취한 와중에도 화들짝 놀라 내 등에서 황급히 내려왔다.

채린은 자기 것을 빼앗긴 억울한 사람의 표정을 하고는 설현이에게 사납게 달려들었고 난 그 앞을 막아서며 채린의 팔을 잡았다.

 

“채린아! 쫌! 그만 좀 해!”

 

설현은 겁을 먹고 내 등 뒤에 숨어 있었고, 채린은 여전히 머리채라도 잡을 듯 손을 사납게 내밀었다.

그 앞을 막아서며 가까스로 떼어내자 채린은 울먹거리며 말했다.

 

“요즘 왜 이래? 내 말이면 껌뻑하던 오빠가……. 왜 말을 안 들어!”

 

날 사랑해서 배신당했다고 우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니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해 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 나 사랑하지 않는다며.”

“내가 언제!”

“며칠 전 내가 나 사랑하는 거 맞냐고 물었잖아.”

“그걸 말을 해야 알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냐? 맨날 다른 남자 만나고 만날 때는 연락도 안 되고.”

“그래서 지금 복수 하는 거야?”

“복수는 무슨, 나도 속상해서 그런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맨날 돼지라 놀리고.”

 

계속 매몰차게 대꾸하자 그녀도 더 이상 자존심을 굽히기 싫었는지 언제부턴가 흐르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그만하자! 앞으로 절대 나에게 연락하지 마!”

“그 말도 너한테 수십 번은 더 들었다.”

“진짜로 연락하지 마, 돼지새끼야!!”

“자꾸 돼지, 돼지 그러지 마라.”

“그럼 살을 빼던가! 미친 돼지 새끼!”

 

날 화나게 하려던 말인 걸 알고 있었지만 막말이 이어지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살 빼고 만다! 너 같은 년한테 돼지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살 빼고 만다!”

 

화가 난 표정과 외침에 설현은 내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 있었고 그런 설현의 손목을 끌고 채린의 옆을 지나갔다.

채린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시선만 내 얼굴에 두고 있었고 한참 걸은 후 뒤를 봤을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서 있는 채린의 어깨가 이 거리에서도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같이 본 설현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말했다.

 

“저 언니 우는 거 같은데 가야되는 거 아니야?”

 

“분해서 우는 거 같으니깐 신경 안 써도 돼. 그리고 너도 봐서 알겠지만 지금 내 상태가 영 좋지 못해서 라면은 다음에 먹자, 계란도 넣고 대파도 넣어서.”

 

내 말에 설현은 대답 대신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오빠가 지금보다 더 뚱뚱해져도 좋아할 것 같애. 그러니깐 살 안 빼도 돼…….”

“그렇게 나 좋아해줘서 고마운데 약속은 약속이니 살은 뺄 거야. 살 빼고 남들처럼 예쁜 옷 입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어. 예전처럼…….”

 

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던 설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오빠. 내가 말실수 했나보네? 앞으로 나랑 같이 매일 걷기 운동하면 되겠다. 집도 근처니깐…….”

“아니, 실수 한 거 없어. 내가 그 동안 너무 한심했던 것 같아.”

 

설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직까지 채린이가 있을까 그 앞으로 가봤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엔 없었다.집에 도착해 누워서 생각해보니 그 동안 내가 너무 한심하게 살아왔던 것에 너무 화가 났다.

 

며칠 사이에 채린이와 불화, 뜬금없는 설희의 여동생, 그리고 다이어트 결심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다음날부터 설현은 자주 전화와 문자를 했었고 한 번씩 채린에게 전화가 왔었지만 전화를 피하며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려고 맘을 독하게 먹었다.

 

 

퇴근 후에는 설현과 같이 동네를 걸으며 다이어트를 빙자한 데이트를 하다 보니 살이 그렇게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설현과 자주 만나면서 모르고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설희 동생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 이성이라기 보단 동생이라는 감정이 앞섰다.

매일 체중을 체크하며 시간이 제법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였고 이대로 괜찮을 지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금요일 밤에 시원한 맥주라도 마실까 싶어 한참을 고민 후 꺼냈다가 다시 넣어두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웠다.

 

설핏 잠이 들었을 때 초인종 벨소리와 현관문을 발로 차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술에 잔뜩 취한 채린이가 보였고 날 올려다 본 그녀는 내게 폭 안겼고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다른 남자들은 술 마시면 전화하던데, 오빤 술도 좋아하면서 그 동안 술도 분명히 마셨을 거면서 왜 전화를 안 해…….”

 

잠결에 지금 이 상황이 난감했어도 내 앞가슴에 묻힌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우린 헤어졌으니깐, 우린 인연이 아니니깐…….”

 

내말을 들은 채린은 들고 온 핸드백을 내 등 뒤로 던지듯 내려놓고 신발을 벗으며 들어오려 했다.

집안으로 들어온다면, 잠을 재워준다면, 또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면, 무르기만 한 내 결심이 허물어 질 것 같아 안으로 들어서려는 채린을 막아섰다.

 

날 밀치는 힘이 점점 약해지다 두 팔을 축 늘어트린 채 채린은 말했다.

 

“나 자존심 다 내려놓고 다시 얘기하는 거야. 살 안 빼도 되니깐 그 이상한 년 만나지 말고 내 옆으로 다시 와. 나도 많이 노력할게.”

“그냥 그만하자, 채린아. 그 동안 내 옆에 있어줘서 많이 고마웠어.”

 

내 말을 들은 채린은 나를 밀쳐내고 아무 말도 없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채린의 갑작스런 방문 후 싱숭생숭해진 맘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아침이 되었고 잠이 오지 않아 혼자라도 걷기 운동이라도 하려 집을 나섰다.

 

혹시나 설현이를 볼까 싶어 그 집 앞을 지나다 잠시 서 있었다.

 

휴대폰에 토요일 7시 50분이라는 시간을 보며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 그냥 지나쳤을 때 등 뒤에서 익숙했지만 이젠 익숙하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현아! 거기 서!”

 

화들짝 놀라 앞에 있는 원룸 건물 주차장에 숨어 그쪽을 쳐다봤다.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오는 설현의 모습이 보이고 뒤에는 꿈에서 그리던 설희의 모습이 보였다.

1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셜현의 뒤따르며 옷자락을 잡으며 소리쳤다.

 

“아침부터 어디 가는 거야?”

“언니랑 말이 안 통하는데 계속 있어서 뭐해?”

“그럼 언니가 싫다 해도 승훈이랑 계속 만나서 연애라도 하겠다는 거야?”

“응, 연애할 거야! 오빠랑 같이 살 거라구.”

 

날 발견하지 못하고 둘이서 마주보며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 자리를 뜨지도 못한 채 계속 둘을 지켜봤다.

 

“설현아, 제발 그만 좀 해. 차라리 너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를 만나.”

“다른 남자는 필요 없어, 언니. 내가 어떻게 오빠를 다시 만났는데. 이제 못 잡으면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것 같단 말야.”

“알았어, 알았어. 집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설희는 설현을 달래면서 둘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나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아 혼란한 마음에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마도 나랑 만나는 걸 설현이 반대하는 거겠지? 당연하겠지. 나이차에 의지가 약한 뚱보에 나 같아도 반대를 했을 거야.’

 

씁쓸한 생각을 하며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을 때 설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뭐해요?”

 

목소리는 젖어 있었지만 일부로 명랑하게 말하는 것을 눈치 챘다.

 

“방금 샤워하고 텔레비전 보는 중이야.”

“나 가출했는데 오빠 집에 가도 돼?”

“가출? 다 큰 성인이 무슨 가출?”

“오빠 만나서 얘기해줄게.”

“그래, 지금 와. 아침 같이 먹자.”

 

급하게 전화를 끊고 토스트기로 빵을 구우면서 식탁에 딸기잼을 올려놓고 계란프라이도 몇 개 굽다보니 현관 벨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설현이가 빨간 눈을 한 채 캐리어 가방을 들고 서 있었고, 가방을 들어 안으로 옮길 때 설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 어떡해……. 난 오빠가 많이 좋은데 언니가 오빠랑 만나지 말라고 해.”

“왜?”

“몰라, 지는 여태껏 연애하고 잘 놀았으면서 이제 언니 행세하는 게 너무 짜증나.”

“무슨 이유가 있겠지.”

“무슨 이유가 있어! 오빤 언니 편들지 마, 그냥 내 편해줘.”

 

내게 소리치는 설현을 달래며 식탁으로 손목을 끌었다.

식탁에 같이 앉아 컵에 우유를 채워 설현 앞으로 밀어주고 빵에 잼도 발라 건네주었다.

설현은 훌쩍거리며 건네준 빵과 우유를 먹었고 나 역시 빵과 계란프라이를 먹을 때 설현의 휴대폰이 울렸고 번호를 확인하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안 받아도 돼?”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자초지종을 듣다보니 어제 설희가 혼자 사는 동생이 걱정되어 집으로 왔었고 설현은 나랑 만나는 걸 설희에게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설희는 그 얘길 듣고는 나랑 만나는 걸 반대하며 밤새 다투다 아침에 가방을 싸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설현의 얘기를 한참을 듣고 있던 중에 내 휴대폰으로도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 번호를 모르는 설희의 전화인지. 채린이 다른 사람 폰으로 내게 전화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늘어지는 벨소리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자 설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훈이니?”

“설희야,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어?”

“동훈이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뭘. 그건 그렇고 내 동생 거기 있니?”

 

빵을 먹고 있는 설현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응, 여기 있어.”

“알았어, 옛날 그 집에 사는 거 맞지?”

“응.”

“너네 집 앞으로 갈 테니깐 지금 나와 봐.”

 

설현은 내 통화를 듣고 언니인 걸 눈치 채고는 나가지 말라며 붙잡았고 그런 설현을 또다시 달래며 밖으로 나갔다.

10년 만에 보는 전 여친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앞에서 차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설희의 모습이 보였고 내 앞에 서자마자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오랜 만이네, 승훈아.”

“그러게…….”

 

설희의 시선은 내가 사는 빌라 2층으로 향했고 창문으로 쳐다보는 설현을 발견하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너 정신이 있니? 없니? 내 동생인 걸 알면서도 집에 들린 거야? 같이 살림이라도 차리려고?”

“너 왜 이리 변했어? 예전에 내가 사랑하던 설희 맞니”

“헛소리 하지 말고! 너 여친도 있었는데 내 동생 만난다고 헤어졌다며? 이제 보니 너 욕심 너무 많은 거 아냐?”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10년 만에 만나서 이렇게 화만 낼 거야?”

“내 동생 데려오라고! 빨리!”

 

설희와 재회를 하고 싶었어도 이런 만남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너무 슬펐다.

 

“알았어, 알았으니깐 진정 좀 해.”

 

설희의 고함소리에 설현도 어쩔 수 없었는지 다시 캐리어 가방을 이끌며 밖으로 나왔다.

 

“현아! 넌 지금 집으로 가, 이따 보자.”

 

설현이 축 처진 어깨로 저만치 걸어가는 걸 본 설현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미안해, 화내서……. 일부러라도 화를 내야만 설현이가 나올 것 같아서 말야. 진짜 오랜 만이다. 그치?”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려는 설희와 결국 집 앞에 있는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승훈아, 이제 다리는 괜찮은 거야?”

“응, 이제 괜찮아.”

 

괜찮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설희는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 해. 너한테 상처 줄 생각 없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네. 그 땐 나 너무 힘들었거든.”

 

한참을 울다 진정한 설희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요즘 힘들다면서? 사귀던 남자와 잘 안됐다고 들었거든.”

“설현이가 별 이야기를 다 했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개운해.”

 

설희의 얼굴을 한참을 쳐다보다 주저주저 하며 항상 궁금해왔던 것을 물었다.

 

“너 그 때…… 왜 날 떠났니?”

 

내 질문에 설희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땐 네가 다리를 이렇게 다 나을 줄 몰랐으니깐. 평생 다리를 절면서 살아갈 줄 알았으니깐……. 그래서 더 좋은 남자 만나는 게 뭐가 이상해?”

“다른 남자 만난 거 탓 안 해. 그냥 늘 궁금했거든 날 왜 떠났는지.”

“내가 미안하니깐, 진짜 미안하니깐 내 동생은 안 돼. 미안한데 예전에 정말 날 사랑했다면 네가 내 동생 좀 끊어주라.”

“그래, 나도 동생이란 걸 알고 나서 상처 안 받게 정리하려던 중이었어. 그리고 너무 걱정 마. 네 동생한테 아무런 실수를 한 게 없으니깐.”

 

이제 할 말을 다하고 들을 걸 다 들었다고 생각한 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 손을 잡으며 조금 전부터 담아놨던 말을 지금 꺼내지 못하면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용기 내어 말했다.

 

“너 지금 애인 없잖아. 우리 다시 시작하는 건 어때……?”

 

한참을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던 설희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니, 나 이제 너랑 자신 없어. 너도 앞으로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우리가 만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여전히 뚱뚱해서 같이 있으면 창피할 것 같아서 그래?”

“그냥 좀 그래.”

 

나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는 걸 단호하게 말하고 설희는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설희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인생이 부서지나, 다리가 부서지나, 둘 중에 하나라면 다리가 부서지자.’

 

살만 빠지면 진짜 내 인연을 만나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보여지는 외모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지난 과거가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래! 세상이 그런 걸 원하는 거라면 죽더라도 다이어트 하면서 죽자.’

 

가슴 한 곳에 늘 품었던 설희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쓸쓸한 결심을 하는 중에도 자꾸 눈물이 나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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