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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미야오, 'HANDS UP'으로 '엠카' 1위..음악방송 2관왕
[스타뉴스 | 문완식 기자] 그룹 MEOVV(수인, 가원, 안나, 나린, 엘라)가 인기 질주 중이다.MEOVV(미야오)는 지난 15일 방송된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첫 번째 EP 'MY EYES OPEN VVIDE' 더블 타이틀곡 'HANDS UP'(핸즈업)이 1위를 차지했다.이로써 MEOVV(미야오)는 2주 연속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 4월 28일(월) 선공개된 'HANDS UP'은 빠르고 현란한 리듬과 독특한 신스 사운드가 어우러진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의 곡으로, 공개 직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글로벌 팬들을 매료시키며 음원 차트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1위 트로피를 품에 안은 MEOVV(미야오)는 "저희를 항상 아껴주시는 TEDDY(테디) PD님을 비롯한 프로듀서님들, 늘 곁에서 챙겨 주시는 매니지먼트팀과 더블랙레이블 식구들께 감사드린다"고 진심이 담긴 소감을 전했다. 또한, "우리 폼폼(PAWMPAWM)들 진짜 감사합니다!"라며 애정 어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MEOVV(미야오)는 'HANDS UP' 선공개 이후 퍼포먼스 영상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 공개, 예능 출연과 더불어 여러 아티스트와의 챌린지를 소화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2일(월)부터 오는 21일(수)까지 서울 영등포구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 B2F 팝업 스토어를 개최, 첫 번째 EP 앨범을 비롯해 다양한 굿즈를 선보이며 더욱 풍부한 콘텐츠의 장을 열고 있다.한편, MEOVV(미야오)는 지난 12일(월) 첫 EP 'MY EYES OPEN VVIDE'를 발매하고 더블 타이틀곡 'DROP TOP'(드랍탑)의 음원과 뮤직 비디오를 공개했다. 'DROP TOP'은 'HANDS UP'과는 또 다른 신선한 느낌으로 MEOVV(미야오)의 다채로운 음악적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했다.https://youtu.be/fnSkdJlO1OA?feature=shared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108/000332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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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09년 소설 '오페라의 유령' 관련 공개작들 ft. 야반가성 (1937)
*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본편 영상을 우선으로 보실 분들은 주의 부탁 드립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seeds.ThePhantomOfTheOpera&hl=ko https://apps.apple.com/kr/app/%EC%98%A4%ED%8E%98%EB%9D%BC%EC%9D%98-%EC%9C%A0%EB%A0%B9-%EB%B9%84%EC%A3%BC%EC%96%BC-%EB%85%B8%EB%B2%A8-%EB%AF%B8%EC%8A%A4%ED%85%8C%EB%A6%AC-%EB%A1%9C%EB%A7%A8%EC%8A%A4-%EC%8A%A4%EB%A6%B4%EB%9F%AC/id1363004039 '팬텀 오브 오페라'라는 영어권 제목으로 알려진 '오페라의 유령'(Le Fantôme de l'Opéra)은 1909년부터 19010년까지 연재한 프랑스 소설 작품으로 가면을 쓴 팬텀이란 인물이 여주인공 크리스틴에게 접근해 벌어지는 내용을 다뤘으며, 이후 수많은 실사판 영화 작품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뮤지컬판, 패러디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오페라의 유령이 극중극으로 나오는 작품들, 1999년 속편 소설 '맨해튼의 유령', 록음악과 함께 과감히 각색한 1974년 영화 '천국의 유령' 및 흉한 외모라고 차별하지 않는 내용인 2011년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여 호평을 받은 작품들, 여러 장르 및 기종으로 나온 비디오 게임판 작품들(이 중 'MazM: 오페라의 유령' 모바일판은 구글 스토어, 아이튠즈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 셀 수 없게 많은 파생작들이 나왔으며, 이 중에선 후술할 작품들처럼 웹 상에서 무료로 접할 수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유니버설 실사판 The Phantom of the Opera (1925) 일부 장면 한정으로 컬러로 볼 수 있는 실사판 무성 흑백 공포 영화 작품으로 평론적으로 극찬을 받고 대중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어 1925년 실사판의 '팬텀' 역시 후대에 오마쥬되며 이후 유니버설이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 투명인간, 미이라, 늑대인간 영화를 제작하는데 영향을 주고, 1929년에는 일부 장면 한정으로 음성 지원이 되는 등 재작업을 한 뒤 재개봉을 한 버젼 또한 인기를 끄는 등 다양한 판본이 나왔으며, 웹 상에서 한국어 자막판 및 화질 보강 및 컬러 복원판도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으며, 1920년대 단성사 뉴스도 관련 사료로 공개 중이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에릭(론 체리 분)은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 숨어사는 작곡가이다.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 있는 습기차고 축축한 수로에 숨어 지내는 그는 아무도 모르게 오페라의 언더스타디(대역)인 크리스틴 (매리 필빈 분)을 가르친다. 그의 목표는 크리스틴이 오페라의 주인공을 맡아 스타가 되게 만드는 것. 그는 급기야 오페라 도중 관객들에게 샹들리에를 떨어뜨려 현재의 소프라노를 오페라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여 크리스틴에게 배역이 돌아가게끔 한다.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 소굴로 크리스틴을 유혹한 에릭 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라울(노먼 케리 뷴)이라는 애인이 있는 상태. 라울과의 관계를 정리한다고 약속하면 오페라 하우스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에릭의 말에 일단 약속을 한 크리스틴. 하지만 그 소굴에서 벗어나자마자 라울의 품에 안기고 공연이 끝난 후 라울과 함께 영국 으로 도망갈 계획을 짠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대화를 엿들은 에릭은 공연 도중 크리스틴을 납치하는 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08)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19)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8027 '야반가성' 30년대판 夜半歌聲 ㆍ Song at Midnight ㆍ 1937 년 주인공이 아시아권 인물들로 바뀐 유성 흑백 영화 작품으로 2차 중일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시기에 개봉했으며, 미신 소재와 같이 국민당에서 금기시하는 내용은 우회해야 되는 등 여러 이유로 각색이 들어갔고, 지금까지 알려진 오페라의 유령 관련작들 중에선 최초의 유성 영화로 여겨지고 있으며(이후 故 장국영 주연 작품으로도 리메이크) '1937년판은 Inter-Pathé' 운영 채널에서 다중 언어 자막 지원 기능과 함께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습니다. 영화는 순회 오페라단이 한 퇴락한 극장에 도착하는 첫 장면부터 전 편을 지배하는 암울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 극장은 10년 전 위대한 오페라 스타 송 단평이 죽은 후 줄곧 빈 채로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극단의 한 젊은 배우가 혼자 그곳에서 연습을 하다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 목소리는 이 젊은 배우에게 노래를 지도해준다. 그것은 사실은 죽지 않고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린 도망자 송 단평의 목소리다.그가 들려주는 자신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회상 형식으로 펼쳐진다. 사악한 영주가 단평이 자신의 딸을 사랑하자 분노하여 그의 몸에 위해를 가했고 그 후 단평은 극장에 숨어 살면서 자신의 망토를 입고 자신이 창작한 위대한 오페라 작품을 대신 연기해줄 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가수는 그 역할뿐 아니라 슬픔 때문에 미쳐버린 연인 리 샤오시아에게 단평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자 역할까지 맡게 된다.중국판 오페라의 유령.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08)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2019) '오페라의 유령' 아르헨티나 실사판 The Phantom of the Operetta (1955) 뮤지컬 호러 코미디 영화 작품으로 각색한 작품으로(1962년 이전 영상 작품이라 한국에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종료) 가면을 쓴 연쇄살인마 '팬텀'으로 인해 벌어지는 내용을 다뤘으고 작 중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 드라큘라 백작, 늑대인간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개그 씬도 포함됐으며 웹 상에서 영어 자막과 함께 공개 중인 영상도 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tvtechnology.com/news/dlt-launches-80s-sitcom-flashback-fast-channel '오페라의 유령' 애니메이션 TV 영화 The Phantom of the Opera (1988) 아일랜드 더블린의 '에메랄드 시티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TV 영화로 다른 각색판에선 생략되기도 했던 페르시아인 '다로가'도 비중 있게 나왔으며, 1987년에 HBO에서 방송 후 VHS로도 출시됐고,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DLT' 운영 채널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몬스터 싱어: 매직 인 파리' Un monstre à Paris ㆍ A Monster in Paris ㆍ 2011 년 '오페라의 유령'을 모티브로 삼아 뮤지컬 코미디로 각색한 프랑스의 CG 애니메이션 영화 작품으로 실험 사고로 커진 벼룩을 흉한 외모라고 차별하지 않고 뛰어난 노래 실력을 칭찬하며 함께 공연하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지만 이를 방해하려는 인물이 나타나자 이에 맞서는 내용을 다뤘고,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세자르 어워드, 애니 어워드 수상작이 됐으며, Tubi에서 지역 한정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tubitv.com/movies/255739/a-monster-in-paris
콩라인박작성일
2025-01-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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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노벨상 = 형상기억종이 = 부정선거 증거
정말 보다보다 살짝 열받아서 한마디 적습니다. 올리신 영상에서, 선관위의 영상의 어디에서, “형상기억종이”라고 적었나요??????짱공 링크 : https://www.jjang0u.com/board/view/fun/15921234/1 선관위에서는 ‘종이가 원 상태로 회복하는 기능이 적용된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짧은 영상의 설명으로는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만, 대법원 “2020수5028”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근복적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특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이 추천한 대학교와 산학협력단의 교수의 주도하에서 이루어졌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링크 : 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20%EC%88%985028)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관위에서도 “인주 번짐 방지기능, 접은 후 원상태로 일정 부분 회복하는 기능이 있는 기능”이라고, 실제 시연회를 열고 반박하였고, 대법원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제가 궁금해하는 의문점을 여쭤보자면,“형상기억종이”라는 단어는, 2020년 21대 총선 이후 대두시 되었고, 문제되었다고 합니다.그러면, 이 글을 쓰는 분들은, 도대체 “형상기억종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듣고’ 문제를 제기하는 건가요???? 추가로, 그러면 이 글을 쓰시는 분은, 현재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법부인 대법원에서 판단하고 결정한 사항을 부정하시는 건가요?????그러면, 사법부인 대법원 판단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저희도 판단해도 괜찮은 거지요??? 마지막으로… 선관위는 해당 영상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영상을 삭제하였습니다만… 자, 여기서, 다시한번 질문입니다.영상을 삭제했으니, “불리한 영상을 없앴다”라고 주장하시고, ‘이것은 사실이다’라고 주장하시지요?그러면, 이번에 비화폰 자료 없애는 것도,CCTV 영상을 없애려 하려는 것도,증언 시 말이 바뀌는 것도,자료를 바꾸려 하는 것도, 전부 “사실인 증거를 없애려 하는 것이니, 이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하는 주장 또한 인정해야겠네요????접은 흔적이 있으면, 접은 흔적이 있기에 조작이라고 주장하고,접히지 않으면, 접히지 않았으니 조작이라고 주장하는데… 사법부인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주장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요.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주장하는 것도 인정하셔야 할 것이니… 자, 이제 토론을 시작해봅시다!!!!! 싸우자는게 아니라, 토론을 하고 싶어요!!!!!!! 논리적으로 합리적이 이야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Nez작성일
2025-01-2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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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25년 소설 '벙어리 삼룡이' 관련 무료 공개작들 ft. '공부의 신'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다이렉트로 보고싶은 분들은 아래 '벙어리 삼룡이' 원작 소설 링크(퍼블릭 도메인 작품이라 위키소스에서 본편 전문 모두 무료 공개 중) 및 아래 무료 공개 중인 1964년 실사판 영화, 1983년 실사판 영화 영상을 우선으로 체크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EB%B2%99%EC%96%B4%EB%A6%AC_%EC%82%BC%EB%A3%A1%EC%9D%B4 1925년 소설 '벙어리 삼룡이'는 제목에도 나오듯 장애가 있고, 막일하는 천한 신분의 고난 속에서도 선량한 성격을 지닌 '삼룡이'와 반면 풍족한 환경에서 길러줬음에도 만만한 사람들에게 폭행을 저지르는 악랄한 성격을 지닌 부자집 아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실사판 영화 작품들도 여러차례 제작되어 1929년 작품 '벙어리 삼룡이'(안타깝게도 현시점에선 유실된 상황), 평과 흥행 양쪽 다 성공한 1964년 작품 '벙어리 삼룡', 이전 실사판처럼 변주를 주되 다른 방식으로 변주를 준 1973년 작품 '비련의 벙어리 삼용', 원작 소설의 일부 요소를 인용하되 70년대 배경 액션 영화로 대폭 각색한 1977년 작품 '삼룡이라 불러라', TV 방송용 단막극 영화로 제작된 1983년 작품 'TV 문학관: 벙어리 삼룡이', 코믹스판 만화, 작 중에 패러디로 인용한 '공부의 신' 한국 실사판 등 영상 매체로도 수차례 진출했습니다.(이 중 1964년 실사판 영화는 연령 제한을 걸어둔 형태로 무료 공개, 1983년 실사판 영화는 전연령 대상으로 무료 공개 중) 아래 내용은 '리디북스'에서 인용한 1925년 원작 소설 작품 소개입니다. 일제 강점기, 남대문 밖 연화봉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나도향의 대표작이다. 사실주의 작품이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결말 때문에 낭만주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사랑, 인간 감정에 대한 사실적 해부, 리얼리즘의 요소와 감상성 등 복합적 요소가 혼합된 작품으로 인물의 성격화가 돋보인다. 운명에 순종하는 전형적인 패배주의적 인물에서 자신을 자각하고 분노하고 싸우는 적극적 입체적 인물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돈과 신분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사회적 약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어두운 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슬픔과 분노, 카타르시스가 동시에 일어나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 실사판 영화들과 관련해선 아래 링크들 및 KMDB에서 인용한 작품 소개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벙어리 삼룡 A Deaf, Sam-ryong (Beong-eoli Samryong) ㆍ 1929 년 봉건지주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벙어리 삼룡이가 주인댁 며느리를사랑하는 내용으로서 낡은 인습에 항거하는 인간성과 사랑의 진실성을 그려낸 작품. 집에 불이 붙은 라스트 신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촬영시도라 하여 높이 평가되었음. * 독립유공자로도 선정된 '나운규' 선생님의 1929년 실사판은 위에 언급했듯 유실되었으나 이 작품을 다룬 '조선극장 주보' 72호, 77호, 79호는 PDF 전자문서로 백업되어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history/leaflet/3062 https://www.kmdb.or.kr/history/leaflet/3064 https://www.kmdb.or.kr/history/leaflet/3065 벙어리 삼룡 Deaf Samryongi ( Beongeori Samryong ) ㆍ 1964 년 착하고 선량한 머슴인 벙어리 삼룡이(김진규)는 오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두어준 오생원 영감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주인 일가를 성심껏 섬긴다. 어느날 돈에 팔려 순덕(최은희)이 난폭한 주인의 아들 광식(박노식)에게 시집온다. 식모로 일하는 추월(도금봉)에게 정신이 팔린 광식은 순덕을 심하게 구박한다. 삼룡은 남편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지새는 순덕 아씨가 안쓰러워 남몰래 연모한다. 삼룡은 광식과 추월이 물레방아간에서 정사를 나누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절초풍해 이 사실을 추월의 남편에게 알린다. 이 일로 해서 그렇지 않아도 아씨를 두둔한다고 눈 밖에 났던 삼룡은 광식에게 죽도록 두들겨맞고 집에서 쫓겨난다. 삼룡이 쫓겨나던 날 밤, 오생원의 집에는 원인 모를 불이 난다. 삼룡은 불기운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기 직전인 집으로 뛰어들어 아씨를 구해낸다. 목숨을 구한 아씨가 광식이 안에 있다며 어쩔 줄 몰라하자 삼룡은 다시 집안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삼룡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 1964년 실사판은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이 됐으며, 1964년 실사판과 관련해선 아래 링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영화예술' 1966년 4월호 https://www.kmdb.or.kr/history/magazine/3219 [한국영화걸작선]벙어리 삼룡: 11월의 영화 Ⅱ https://www.kmdb.or.kr/story/10/5490 비련의 벙어리 삼용 A Deaf Mute Sam-Yong-Yi in Sad Love (Bilyeon-ui beong-eoli Samyong) ㆍ 1973 년 섬마을 선주이고 지주인 오생원의 하인인 벙어리 삼룡이는 자신을 길러준 은혜를 갚기 위해 주인집에 충성한다. 그러다가 오생원의 아들 광식이 순덕과 혼인하여 첫날밤부터 학대하자 삼룡은 그런 순덕을 가엾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그러나 순덕과 삼룡의 사이를 어이없게 오해하여 삼룡은 쫓겨나고, 광식의 부정을 본 범실의 남편이 오생원 집에 불을 지른다. 아우성 소리에 삼룡은 오생원 집으로 달려가 이미 숨져간 순덕의 시체를 안고 하염없이 바다로 떠난다. * 1973년 실사판은 영어 더빙판을 영상도서관 VOD 형태로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688/own/videoData 삼룡이라 불러라 Call Me Sam-ryong (Samryong-ila bulleola) ㆍ 1977 년 벙어리인 삼룡과 이룡은 시골에다 철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연마하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하여 고향친구인 구산을 찾아가지만, 구산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온 돈을 사기당하고 만다. 형을 잃어버린 삼룡은 피리소리로 형을 찾겠다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피리를 불다가 돌이와 친해져 돌이 엄마인 윤희가 경영하는 술집 '피노키오'에 취직이 된다. 한편 이룡은 암흑가의 두목 강유진 밑으로 들어가고, 강유진은 자신이 경영하는 '싸파이어'의 영업이 부실하자 온갖 수단을 다해 '피노키오'의 윤희를 못살게 군다. 윤희가 강유진에게 잡혀가자 삼룡은 그녀를 구하러 뛰어들고, 이룡도 삼룡과 함께 그들 일당을 일망타진한다. * 1977년 액션 영화 '삼룡이라 불러라'는 영상도서관 VOD 형태로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3092/own/videoData * 위에서 언급한 '공부의 신' 한국 실사판은 공영방송 KBS 작품이라 전편을 무료 공개 중이며, '벙어리 삼룡이' 패러디 장면은 7화에 포함되어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program.kbs.co.kr/2tv/drama/gongsin/pc/list.html?smenu=a51fb5
콩라인박작성일
2025-01-0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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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방문기] 중국 베이징 피코 본사 초청 탐방기
방문기 - 중국 베이징 피코 본사 초청 탐방기Pico Beijing Headquarters Invitation Tour원본 게시글 :https://blog.naver.com/vr_insight/223672469905 많은 평가에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잘못된 정보의 경우 댓글을 통해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피코로부터 항공권 및 숙박 비용을 지원받은 방문기이며 모든 내용은 가이드라인 없이 개인 의견으로만 작성됩니다.* 본 탐방기는 정치적 / 사상적으로 무관하며, 글로벌 XR 유저 간 건전한 교류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https://blog.naver.com/vr_insight/223672469905 목차1. 들어가기2. 준비 ~ 첫 번째 날3. 두 번째 날4. 세 번째 날 ~ 귀국5. 마무리1. 들어가기안녕하세요 쭘쭘입니다.2024년 10월 초.피코의 공식 공지를 통해서, “2024 인텔 X 피코 스포츠 대회” (이하 피코 컵)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러왔습니다.작년, 재작년에도 피코에서 VR 스포츠 대회를 진행했었지만,수상 상품은, 현금에 불과하여,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참가하지 않았었지만,이번 2024년 대회의 경우, 대회 상품 특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베이징의 버드 네스트에서 열리는 VR 스포츠 결승 대회 혹은 PICO 본사 방문할 수 있는 여행 팩이 추가로 수여됩니다."베이징 VR 대회 본선 참관 자격과, 피코 중국 본사의 방문 기회.VR을 사랑하는 하나의 유저 입장에서, 수십, 수백만 원의 현금 경품보다, 훨씬 값질 수도 있는 이 경품 덕분에,"이번에 한번 죽을 각오로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고, 만반의 대회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제가 선택한 종목은, “Tempo Club”이라는 비트 세이버에 DDR을 결합한 느낌의 리듬게임.이미 피코 트래커 사용자로서, 여러 번 플레이해본 경험도 있던 바,콘텐츠 자체의 재미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고 플레이했던 것과 다르게, 상당히 뛰어나대회가 아니었더라도, 종종 즐기던 게임인 만큼, 상당히 진지하게 대회를 준비하였습니다.10월 17일부터 11월 3일. 약 3주 정도 되는 기간 동안평일에는 일하는 시간 제외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주말에는, 내내 템포 클럽을 플레이하며, 누구보다도 점수를 쌓았는데,콘텐츠의 특성상, 일종의 춤을 춰야 하는 게임이기에, 동선 / 점프 / 동작이 모두 필요하여,부가 효과로 3주간 약 5kg의 체중 감량도 달성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템포 클럽 한국 유저 순위표 (약간의 오차는 있음)대회의 마감 시간인, 11월 3일 오후 7시.결국! 약 23만 점의 점수를 습득해, 국내 1위 / 글로벌 2위의 등수의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하루 내내 미친 듯이 무언가의 목표를 위해 몰두해 봤다는 게, 정말 오래간만이었고,나름의 성취감과 만족감 또한 매우 행복한 마무리였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피코 컵의 베이징 대회 참관. 그리고 피코 본사의 방문 기회”오늘의 방문기는, 이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는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여정의 출국은 2024년 11월 15일, 입국은 11월 18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사용되는 일부 이미지 소스는, 피코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 피코 공식 촬영본을 사용합니다.2. 준비 ~ 첫 번째 날(~ 2024.11.15)피코 컵 온라인 대전 마감 후 이틀 뒤인, 11월 5일.피코 코리아 마케팅 담당자님께서, 이메일을 통해, 당첨의 축하와 함께 중국 방문 과정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공유 받았습니다.이번 방문에 있어, 한국인은 저와 피코 코리아 담당자님. 단둘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방문 기한(피코 컵 개최 기간)은, 2024년 11월 16일부터 17일.꽤 빠듯한 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마침 11월 8일부터 중국의 비자 자유화가 선언되며큰 행정적 부담이 사라졌다는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됩니다.최근이 본업이 조금 바쁜 시즌이었기에, 정말 정신없는 준비 기간을 거치며,여권은 출국 3일 전에, 캐리어 (짐)은 출국 당일 새벽에 준비할 정도로, 촉박한 준비 기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항공기 안에서의 VR Insight인천 (인천 국제공항) - 베이징 (북경 수도 국제공항) 소요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정도.동북아 국가들은 다들 인접하게 붙어있다 보니, 비행거리 자체는 큰 부담 없이 가까웠습니다.개인적으로, 중국어라곤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영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왔었는데,영어 구사자 비율이 매우 낮은 국가였던 만큼, 입국부터 여정 전체적으로 손짓과 발짓을 많이 썼었습니다. 베이징 T 호텔중국 도착 후에는, 택시로 약 40분 거리.피코의 지원으로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 인근의 5성급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대충 들은 바로는, 해당 호텔의 위치가, 피코의 모회사인 바이트 댄스 (및 자회사)와 인접해 있어,바이트 댄스 (및 자회사) 방문객 및 지사 직원들이 자주 머무르는 숙소라고 합니다.피코 행사 참여 대신 투어를 선택한 타국 대표 유저나, 국내외 피코 담당자.심지어는 피코 컵 중국 선수들 또한 같은 호텔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나중에 출국 날 알았습니다…호텔 시설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만족스러워, 머무는 내내 편하게 잘 머물렀습니다.3. 두 번째 날(2024.11.16)중국 방문 이틀째이자, 피코 컵 행사의 첫째 날인, 11월 16일이 밝았고,피코 중국 직원들도 다들 감탄할 정도로 매우 맑고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베이징 국가체육장 / Bird's Nest Stadium)"피코 컵" 또한 스포츠 대회에 속하기에, 그 상징성을 더하기 위해서인지,오프라인 결승전의 위치는, 앞서 2008 / 2022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물론, 아무리 VR 관련 대규모 행사더라도, 최대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전부 사용하기엔 무리인 만큼,스타디움 중앙이 아닌, 내부 편의 시설에 이벤트 부스를 가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올림픽 경기장 중 일부를 사용하지만,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고, 타 행사가 진행되었지 않았던 만큼피코 측에서 이틀간 경기장 전체를 대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 연습 및 리허설 중인 선수들행사 시작은 10시 30분부터 시작하기에, 이보다 일찍, 안내와 통역을 도와주실 피코 한국 담당자님과 만나 10시에 입장했지만,내부에서는 이미 방송 준비와 참가 선수들이 연습 겸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해당 경기는 중국 스트리밍 플랫폼인 빌리 빌리, 위챗 라이브, 틱톡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방송되었다고 하며,말레이시아 대표가 나중에 말해주길, 약 3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참가자 중 일부는, 개인 스트리머 분들도 오셔서, 방송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행사장 곳곳에는 자유롭게 피코 4U를 배치해 놓아, 일반 참관객들도 플레이하게 해 두었으며,대부분 조만간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리허설 겸 몸풀기로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코 포토부스 피코 시상대 겸 포토부스 수상을 위해 보관 중인 우승컵들.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부스도 여럿 마련되어 있었습니다.시상대를 겸하는, 흰색 포토부스에서는, “Proto”사의 홀로 부스가 설치되어 있으며,사진을 찍으면, 카툰 스타일로 보정되어 실시간으로 출력하여 제공하는 부스입니다.QR로도 제공되기에, 보관해 가서, 집에서 출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수상 인원의 경우, 모두 여기서 사진 하나씩 찍고, 포즈도 취하는 곳인데,시상 시간이 아닐 경우, 누구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터링 겸 상담부스약간의 다과, 샌드위치, 음료 등을 제공하는 케이터링도 제공되었으며,그 옆으로 소규모 상담 부스가 존재하였습니다.피코 엔터프라이즈 관련 B2B 상담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가 싶었으며,주변에 항상 직원들이 상주하는 분위기이긴 했습니다.11월 치곤 상당히 따뜻한 편이라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11월의 야외 행사는, 오래 있을 경우 추웠던 만큼,담요와 핫팩을 개개인별로 제공받았고, 여기서 커피랑 차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대기하는 중 촬영된 사진. MC 및 중계 아나운서진행의 경우, 총 3분의 진행자가 맡게 되었습니다.해당 분들은, 중국 스포츠 중계, 해설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중국어로 뭐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발성이나 분위기 리딩은 잘 해 주시는.확실히 프로틱한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이셨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 농구 본선 플레이 경기 대진표와 우승자 시상식첫 종목으로는 “올인원 스포츠”의 농구로 시작되었습니다.사전에 랭킹을 차지한 총 8명의 유저가, 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합을 겨루는 식으로 진행됩니다.듣기로는, 모든 참가자 (선수)는 중국 각지에서 피코가 숙박 및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1,2,3등 경기가 끝나는 대로, 시상식을 가지며 기념사진 및 단체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각 등수마다 별도의 상금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추후 개개인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네요. 점심 식사 : 铜锅涮羊肉 (양고기 샤브샤브)경기 중, 점심시간에는 피코 한국 담당자분께서 함께 점심 식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덕분에 피코 본사(중국) 마케팅 담당자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자 등,피코의 여러 관계자분들과 대동하여, 난생처음 먹어보는 생 양고기 샤브샤브도 먹어보는 유익한 자리를 가졌습니다.피코 관계자분들은 대부분 영어 소통이 가능하셨던 관계로, 한국 담당자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소통이 가능했으며주로, 한국 VR 유저들의 사용 형태와, 시장 상황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 복싱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양궁 본선 플레이식사 이후에는, 올인원 스포츠의 다른 종목인, 라켓볼 - 복싱 - 양궁 - 축구 순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PVP 콘텐츠의 경우 특히 사람 대 사람 간 피지컬의 플레이가 나다보니,딱 봐도 고인물이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티키타카 플레이가 자주 나왔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축구 우승자 시상 인터뷰인상 깊은 스토리라면, 올인원 스포츠 축구 종목 우승자가 현직 축구 심판으로서 활동 중이고,우승자의 아버지께서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직 축구 코치로서 활동하는, 축구 부자였기에,부자 모두가 웃으면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훈훈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템포 클럽 플레이 예시 템포 클럽 중국 본선 선수피코 컵 첫 번째 날의 마지막을 장식할 종목은, 유일하게 비 올인원 스포츠 게임인, “템포 클럽”이었습니다.총 8명의 최종 본선 선수들이, 랜덤으로 선정되는 곡 중 하나로 1:1 대진하여, 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형태로,동시 진행이 아닌, 2명식 한 조로 진행되어, 획득 점수의 값이 높은 사람이 이기는 방식입니다.템포 클럽의 경우, 다른 종목에 비해 본선 진출 선수가, 유독 20-30대 여성이 많았습니다.전체적으로 성비는 저를 제외하고, 약 8명 중 5명이 여성 선수였으며,우승자 또한, 이번 피코 컵 전 종목 중 유일하게 여성 선수가 우승컵을 거머쥔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좌 :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피코 직원분우 : 급하게 몸풀기 플레이..현장을 관리하는, 패션부터가 힙했던 피코 직원 한 분께서, 템포 클럽 음악 비트에 맞춰 장난삼아 춤을 추셨는데,이분은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셨는지, (저를 포함해서) 어기적 어기적 한 움직임과 다르게, 확실히 몸의 춤선이 살아있었습니다…저 또한 국내(한국) 1위, 글로벌 2위를 달성한 종목이 “템포 클럽”이었던 만큼,특히나 템포 클럽 선수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런 제 모습을 보신 피코 한국 담당자님께서,"중국 우승자 VS 한국 대표" 이벤트 매치를 한번 해 보는 게 어떠신지 제안해 주셨습니다.이런 행사에서, 타국 유저들과 함께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던 만큼, 냉큼 부탁을 드려봤고,대회 진행 담당자와 이야기해본 결과, 나름 소소한 이벤트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주셨는지, OK 승인이 나왔습니다.직접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만큼, 춤추기엔 불편한 차림에, 연습도 전혀 안 하고 있었지만,OK 승인을 받자마자, 우선 국가 대표(?)로 플레이를 하게 된 만큼, 최소한 나라 망신(?)은 시키지 말았어야 하므로허겁지겁 남는 체험용 피코 4 울트라 하나 집어다가, 급하게 몸풀기도 풀어줬습니다. 부끄러워서 함박웃음 실제 경기 영상부끄러움은 제 몫이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플레이 자체는 무난하게 잘 해냈습니다.승부와 직접적인 연관된 경기는 아니었던 만큼, 너무 부담 가지지도 않았고,해외 랭커가 참가해서, 붙어본다는 컨셉도 중국 유저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였는지,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집중해 주셨습니다. 우승자 상품 시상자로 참가 참가 기념 촬영결론적으로는, 중국 은상 유저에게는 승리했지만,아쉽게도 한 번의 실수로, 금상 수상자에게는 패배하였습니다.지긴 했지만, 스스로도 엄청 재미있게 즐겼기에 일말의 후회는 없었고,이번 템포 클럽 우승자에게 한정, 한국 대표인 제가 트로피를 수여하는 시상자의 역할도 함께 했습니다.제가 마지막 게임 플레이 참가자(선수)였던 만큼, 저를 이후로 첫째 행사가 마무리되었으며,한국 대표인 제가 흥미로우셨는지, 기자 / 사진사들한테 포토존 촬영 여러 장과, 간단한 인터뷰로 감사 인사도 전했습니다. 밤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받은 트로피와 VR Insight 명함공식 플레이어는 아닌 만큼, 트로피는 받지 못했지만,대회 운영 측에서, 피코 굿즈를 전시해 두는 곳에서, 대회 아이콘으로 걸어두었던 딱 하나 있는 메달을 떼어다, 수여해 주셨습니다.이번 반응이 국내외 담당자님들 모두 꽤 재미있게 보셨는지,기회가 된다면, 진짜 올림픽처럼. 글로벌 단위 행사로 진행해 보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베이징 피코 본사 사무실.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일정에 포함되었던 “피코 본사 오피스 투어”를 위해, 피코 본사를 방문했습니다.피코 VR 본사는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 인근 IT 거리에 위치하였으며,개인적으로 (피코 모기업인) 바이트 댄스 본사 건물 내부 일부 공간을 작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라, n 층 규모의 거대한 빌딩 통째로가 피코 VR 전용 사옥인 것을 알고, 그 스케일에 상당히 놀랐습니다.모기업 자체가 한국의 인식보다 상당히 규모가 큰 IT 공룡기업 중 하나인 만큼,바이트 댄스 본사를 기준으로, 주변 블록 상당수가, 계열사들이 입점한 빌딩들이었으며 여기에 피코도 속합니다.(인근에는 피코 VR의 HW RnD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도 존재하나, 보안 상 이번 기회에 방문하지는 못하였습니다.)사옥 내에서는 어떠한 촬영도 금지되어 별도 참조 이미지는 촬영하지 못하였습니다.보고 들은 것의 일부는, 비밀유지 서약으로 인해 방문기에는 모든 내용을 작성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1층은 로비층. 지하 1층에는 사내 식당이나 카페, 헬스장, 휴게실, 1인 집중실 등으로 편의 시설 위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독특하게도, 곳곳에 0원 자판기가 존재하여, 그곳에서 사무비품 (마우스, 키보드, 스탠드 등)을 자유롭게 뽑아갈 수 있었습니다.2층부터는 직원들의 사무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문 시간이 토요일 저녁임에도 업무 중이신 직원들이 자주 보였습니다.어느 나라든, IT 업계에서는 늦게까지 일하는 익숙한 모습에 약간 가슴이 찡해졌습니다.모든 직원들의 자리에는 곳곳에 자사 제품인 피코 HMD들이 한가득..HW 개발담당 직원 자리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많으면 20여 개의 피코 VR들이 수둑히 쌓여있는 곳이 종종 보일 정도였습니다.M / A / H / D / P 사 등, 다양한 시장 경쟁사들의 하드웨어들도 드문드문 볼 수 있었습니다.제품의 개발 과정에서, 여러 가능성과 성능을 실증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토타입 제품 실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상당히 독특하고도 신기한 외관이나 가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여러 시도들과 스케일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피코 오피스 투어 과정에서 느낀 점은, 아래, 마무리 파트에서 함께 작성하겠습니다.층수가 높아질수록 보안 등급이 높아지는 보안 구성 상, 저는 모든 층을 둘러보지는 못하였고,n 층까지만 담당자님 동행 하에 함께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레이시아 방문자와 함께 저녁호텔에 복귀 후. 피코 행사 대신 관광을 선택한 말레이시아 대표도 마침 비슷한 시간에 복귀하여, 주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말레이시아의 경우, 영어와 중국어가 흔히 쓰이며, 해당 유저분은 관광지 부근에 거주하신다 하여, 영어 소통이 원활했습니다.말레이시아 대표는 저에게 중국 관광 후기를, 저는 말레이시아 대표에게 피코 컵 후기를 말해주며,서로 대리 체험과 함께, 동남아 시장에서의 VR 유저의 시장 상황과, 보급, 인식 등을 주고받았습니다.4. 세 번째 날 ~ 귀국24.11.17 ~ 24.11.18 피코 컵 두 번째 행사 날의 오프닝피코 컵 두 번째 날이자, 베이징 방문 삼일차 아침이 밝았습니다.첫 번째 날과 그대로, 아침부터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에 방문하여, 두 번째 날 경기 관람을 했습니다.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에서 온 VR 인플루언서도 함께하고 있습니다”라는 느낌의 멘트도 했다고 하니 꽤 부끄러웠습니다.. ㅎ 올인원 스포츠 : 배구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탁구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배구 본선 플레이두 번째 날의 진행 종목은, 올인원 스포츠의 배구 - 테니스 - 배드민턴 - 탁구 - 하키 순으로 이어졌습니다.배구나 탁구 같은 경우, 중국 내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다 보니 그 접전이 상당히 치열하게 이뤄져서,1득점을 하는데도 적게는 여러 번, 많게는 수십 번 스매시가 이뤄질 정도로 격렬하였습니다. 바이트 댄스 산하 쇼핑몰 “1733”산하 그룹 목록에 PICO 로고도 함께 있음.경기 후, 피코 코리아 담당자분께서 바이트 댄스 그룹에서 운영 중인 “1733”이라는 쇼핑몰 방문을 제안해 주셨습니다.쇼핑몰 이름이 숫자인 “1733”인 이유는. 주변에 존재하는 사찰인 “대종사”가 1733년에 만들어진 이유.그리고 중국어로 1733의 발음이 “같이 놀자” 와 유사하여 명명된 이름이라고 합니다.지하 ~ 저층 부는 쇼핑몰로, 고층 부는 사무실로 운영되며, 신도시에 들어오는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의 평범한 쇼핑몰이었습니다.강호동 이름을 달고 있는 한국식 고깃집이 이곳에 영업 중이었습니다.쇼핑몰 정 중앙에, 쇼핑몰에 어울리지 않는 큰 로비 공간 겸 무대가 있었는데.이곳에서 피코 4 울트라와 같은 신형 기기를 발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쇼핑몰의 역할도 하지만, 그룹 내 제품 발표 및 시연장의 기능도 할 수 있도록 쇼핑몰의 설계를 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점심 식사 : 베이징덕을 포함한 코스요리베이징 세 번째 날의 점심 식사도, 피코 직원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피코 관련자 분과 함께하는 두 번째 점심 식사에서는, 첫 번째 날에 함께 식사했던 인원들을 포함해,피코 일본 판매 담당자분 등이 추가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전체적으로 외국인 관점에서 본 이번 행사의 간단한 소감. 그리고 제 본업 (VR 관련 직종)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 드렸으며.이번 식사에서의 주요 대화 주제는, 한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였습니다.(생각보다 미용이나 쇼핑, 드라마 등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식사의 경우,, 딱 봐도 맛있게 생긴 것들이 코스로 계속 나와서, 정신없이 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이번 여행에서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맛있었고, 양도 풍성해서 남길 정도였습니다.이렇게, 피코의 일정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그다음 날. 출국 날이자, 11월 18일 월요일.월요일이라 일부 관광지는 문을 닫는 관계로, 공항이동 전, 간단하게 로컬 구경을 산책 삼아 다녀봤습니다. 아침 운동 중인 베이징 시민들.인상적인 것은, 중국은 생활체육에 대한 허들이 상당히 낮고 대중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대형 공원에는 수백 명의 중장년층이 모여, 대표적으로는 체조. 그 외에 댄스나, 부채춤, 칼 무예, 태극권 등을 하였는데퍼블릭 공간에서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데 있어, 후술할 다양한 VR의 사용층에 영향을 준 부분이 아닌지 추정되었습니다. 로컬 쇼핑몰로컬 쇼핑몰에도 들려, 화웨이 / 샤오미를 비롯한 여러 IT 스토어에도 들려 여러 제품을 보았지만,화웨이의 폴더블 스마트폰 정도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정도였지, 그렇게 특별한 제품이나 구성은 볼 수 없었습니다.VR / AR / XR 디바이스 관련해서도, 일반적으로 전시해놓지 않았으며,유일하게 발견한 거라면, 화웨이에서 발매한 AR 글라스 (화웨이 비전 글라스)가 실물 없이 템플릿만 전시된 정도였습니다.이후, 공항으로 이동. 저녁 즈음에 한국으로 귀국하여.4일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북경 VR 여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5. 마무리이번 방문기를 통해, 글로벌 VR 유저들의 열정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VR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매우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중국 유저들의 VR에 대한 대중성과 인식에 대한 점이었습니다.앞서 여러 사진들에서 알 수 있듯, 비록 우승 자체는 일반론적인 피지컬의 차이로 인하여, 젊은 남성의 비율이 높았지만,충분히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가지고, 본선에 진출한 유저들의 총 성비는 남녀 6:4 수준으로, 여성 유저의 비율이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여기에 더해, 선수로 참가한 유저의 연령층도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으며.중년 ~ 노년( 50 ~ 70대 )이라 부를 수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VR에 대해 높은 이해도와 적극적인 활용을 보여준 것은한국인 유저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광경이기도 했습니다.이러한 차이는, 앞서 언급했듯, 생활체육이 매우 대중화된 중국의 특성상,생활체육의 니즈와 활용이, 공간적 제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VR로 그대로 이어져 발현된 문화라 생각됩니다.특정 기술의 폭발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그 기술이 특정 연령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남녀노소 모든 유저들에게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현재 중국의 VR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의 높은 잠재성을 보여준다 생각되었습니다.또한, 국내외 유저들에게 “피코가 중단기적으로 VR 사업에 철수할 수 있다” 우려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하지만,피코의 모기업에서 표방하는 방향성, 피코의 예산 및 기업의 스케일, 투자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 등.개인적으로 보고 들은 종합적인 내용을 종합한, 주관적인 생각으로선,"방향성 자체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XR 시장의 진출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로 판단하였습니다.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정은 VR이라는 기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그리고 VR 인플루언서로서 많은 영감을 준 시간이었습니다.앞으로도 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통해 글로벌 XR 유저들과의 교류를 이어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피코 관계자분들,그리고 이런 여정을 앞으로도 함께 가꿔갈 독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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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마오 아들 달걀 볶음밥 먹다 뒤졌다는 사료 뒤져본 결과
11월 25일에 발생한 미군 폭격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 과정이 마오안잉이 달걀 볶음밥 해먹을려다 생긴 연기 때문에 어그로 끌려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게시물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내용인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먼저 마오 아들 죽음에 대해 증언한 사람들은 Ding Ganru (당시 지원군 본부 작전 책임자), 조남기, Yang Fengan (펑더화이의 비서), Cheng Pu (폭격 생존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여러 보고서를 포함하여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11월 25일 오전 10시에 폭격이 발생했고 이때 마오안잉은 사망한 걸로 보임 먼저 마오안잉이 죽기전에 당시 다른 군인들에게 받은 취급을 보면 邓华将军传 등화장군전기 중일전쟁부터 한국 전쟁까지 참가한 등화장군을 다룬 전기에서 마오안잉은 개 싸가지 없는 새끼로 서술 되어 있음 지 아빠 빽 믿고 그동안 엘리트 코스 밟은거 가지고 오만하게 군다 다른 장군 수기에도 스탈린에게 받은 권총이라며 자랑하는 등 좋지 못한 개 싸가지 없는 새끼 방공 조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의 안전이나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새끼라는 언급이 있는거 보면 아마 당시 중국군 내부에서도 마오안잉에 대한 인식은 나빴을꺼라 생각되고 마오안잉 사망 원인 중 하나인 마오안잉이 방공 수칙을 무시했기에 생겼다는 주장은 이 책을 통해서 퍼진거라고 생각됨 险难中的共和国领袖与将帅 고난에 빠진 공화국의 지도자와 장군들 우리가 흔히 아는 달걀 10개와 볶음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는 책으로 이 책에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보낸 계란 10개를 언급하며 작전실에서 밥을 볶은건 러시아어 통역사였는데 같이 있던 Cheng Pu는 폭격 소리를 듣고 도망쳤음 Cheng Pu는 탈출하고 나서 지휘관이 안에 누가 탈출 못 했냐는 말에 러시아어 통역사와 마오안잉은 도망 못 쳤다는 기록이 서술 되어 있음 여기서 마오안잉 사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서적에서 나온 주장을 바탕으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네이팜이 떨어져서 싹다 타버렸다는데 생존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작전실에다 계란 볶음밥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있을까? 간단한 조리시설은 있을꺼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밥 까지 볶을 정도가 될려나? 보내준 달걀은 진짜로 보내주긴 한 건가? 마오안잉이 죽기전부터 인근에는 미국 공습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 전선사령부 부사령관이 중국 인민군 총 사령관인 펑더화이에게 달걀 10개만 보낼리가 없음 달걀을 전달하면서 전쟁에 관련된 문서 라던가 편지를 주고 받은게 없는거 보면 달걀 줬다는 일 자체가 존재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 그 지역에 있던 참전자 증언을 따르면 한국에서 11월은 엄청 추웠기 때문에 아무리 등화관제를 해도 병사들이 몰래 몰래 난로를 피웠다고 주장이 있어서 당시 폭격을 유도한 연기가 마오안잉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거기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 마다 폭격 당시 2명이다 혹은 3명이다 마오안잉이 볶았다, 볶으라고 시켰다, 볶는걸 같이 먹자고 하다 변을 당했다 사람마다 변을 당한 시간이 7시,10시다 뭐 이러고 있어서 진짜 재수 없어서 맞은건지 달걀 볶다 맞은건지,달걀을 삶았는지, 과일(아마 사과)을 구웠다가 네이팜에 죽었는지, 삶은 달걀, 꽃빵을 먹다가 놀라서 잘못 삼켰다 질식사 바리에이션도 있고 마오쩌둥 아들이 겁쟁이 마냥 도망치지 않고 결국 네이팜에 타 죽었다 등등 많음 거기다 마오안잉 사망 전날인 24일에 벌어진 폭격은 중국 지도부들은 이미 미군이 중국군 작전실 특정해서 킬각 재고 있는걸 눈치 까고 대공망을 설치하고 있던걸 보면 중공군은 미군에 공중 폭격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다는게 분명한데 그걸 마오안잉한테 경고 안 해줘서 작전실에 있던 마오안잉이 뒤졌는지 아니면 장군들이 마오안잉에게 경고 해줬는데 무시해서 뒤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중국군은 미국이 자기네들 작전실 특정 했는지 몰라 가지고 마오안잉이 작전실에 있다가 뒤졌는지 정확히 왜 어쩌다 죽었는지 대해서 문서나, 서류로 남은게 없고 있는 기록 조차 대부분 구전 기록인데다 죽은 시간, 그를 죽인 전투기 기체, 죽은 이유, 뭘 먹다가 죽었는지, 불타 죽었는지 전부 제각각인거 보면 마오안잉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애매모호함 결론이 뭐다? 앞에 장황하게 글 써놨지만 결국은 모름임 마오안잉 죽음 자체는 폭격 맞고 죽었다 정도로 끝날 이야기인데 마오안잉 계란 볶음밥 먹다 죽은 썰 부터가 중국에서도 있고 한국에서도 중국에 대한 웃음거리로 여겨지면서 일부 사료들하고 엮이고 부풀려져서 탄생한 누더기 골렘 같은 야사라 당장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는것만 봐도 계란 볶음밥 만들어 먹다가 미국 폭격기에게 어그로 끌려 죽었을 가능성은 낮긴한데 문제는 해당 가능성이 0이 아니여서 이런 미적지근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음 최소한 한국에서는 달걀 볶음밥 좀 먹는다가 죽을 일 없으니 오늘 하루는 중국집에서 달걀 볶음밥 시키는게 어떨까?
츠데츠데작성일
2024-1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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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장문) Gemini 1114에게 2025 수능 수학 풀게 해봄
이전에 o1 나왔을 때 수능수학 풀게 해서 글 올린 적 있었는데 이번에 2025 수능 수학은 왠지 모르겠는데 o1이 잘 못 푸는 문제가 몇 개 있었음 oai 측에서 토큰 이슈 떄문에 성능을 일부러 낮췄을 수도 있고, 아니면 뇌피셜이긴 하지만 평가원이 일부러 부정행위 등 방지하기 위해 인공지능이 잘 못 푸는 문제로 냈을 수도 있음 이번에 새로 나온 Gemini 1114는 어떨까? 하고 수능 문제 똑같이 수식 Latex으로 입력해서 별도의 성능 향상에 도움되는 프롬프트 없이 풀게 해봄 또한 객관식은 선택지를 제거한 형태로 문제를 제공함 본인 서울대 수학과라 풀이과정도 검토 가능하니 검토과정도 같이 올려보겠음 ------------------------------------------------------------------- 먼저 15번, (나) 조건에서 g'(x)=0 이 되는 곳이 전부 4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추론하면 되는 문제 이걸 떠올리면 x<0 인 부분에서 이차함수 3x^2 + 2ax + 15 의 두 근의 차가 4가 된다는 걸로부터 a값을 쉽게 구할 수 있고, f(x)도 찾을 수 있음 단순히 계산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단순한 인공지능에겐 어려울 수 있는 문제이고, o1도 풀지 못했었음. 풀이과정이 사실 완전히 엄밀하진 않지만 (x<0인 부분에서 g'(x)의 근이 한 개만 발생하는 경우가 불가능하다는 과정이 생략됨), 어쨌든 (가)(나) 조건을 만족하는 상황을 잘 캐치해냄. 특이한 점은 a=9가 계산과정 없이 바로 나왔다는 건데, 아마 계산과정은 생략해서 보여준듯? 아무튼 찍어서 맞은 게 아니라 변수 값들이랑 f(x)까지 실제 답이랑 똑같이 잘 구해냄. 20번 정답 : 32 Gemini 제출: 32 (O) k값 범위 추론하고, f(f(x)) = 3x 라는 식에서 1/(k^3 * 5^3k) 가 x 자리가 아니라 f(x)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만 추론하면 x = 12 대입해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 근데 비정형화된 문제라서 어려웠다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인공지능이 풀기에도 불리한 문제라 o1도 오답을 냈었음 풀이과정에서 불필요한 과정이 좀 많긴 했지만(중간 생략함) k에 관련된 식 세우고, f(x) 식도 제대로 찾아서 대입해서 풀음 20번 정답 : 36 Gemini 제출: 36 (O) 21번은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f(x)=0의 근이 -1밖에 없어야 한다는 걸 추론한 후 인수분해해서 판별식 쓰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 이것도 왠지 모르겠는데 o1은 이 간단한 추론을 못 해서 한참 헤맸었음… 처음 나왔을 때 폼이면 금방 발견했을 거라고 생각하긴 함 빨간색 박스 친 부분이 핵심. 1이 근이면 3도 근이고, 7도 근이고… 이런 식으로 모순이 발생한다는 걸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추론해냄. 이후 인수분해해서 판별식 써서 범위 구하는 것도 깔끔함 21번 정답 : 16 Gemini 제출: 16 (O) 22번은 수열 추론 문제로, 수능 킬러로 출제된 수열 추론 문제는 지금껏 인공지능이 제대로 푼 걸 한 번도 못봤음. 이 문제는 수열 추론 중에서는 비교적 쉬운 편인데, |a_3| 가 될 수 있는 값 먼저 구하고 역추론하면 되기 때문 Gemini는 역시나 a_1 기준으로 경우 나누는 식으로 접근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면 케이스가 너무 많아져서 다 따지기가 힘듬 실제로 |a_1|이 될 수 있는 값은 6, 7, 8, 9, 10, 24 라서 답이 64가 돼야 하는데, 8, 9, 24만 구해서 틀림 실제로 풀이과정을 보면 케이스가 너무 많아져서 중간에 생략한 케이스들이 있음 22번 정답 : 64 Gemini 제출: 41 (X) 미적 28번, f(x)의 식을 구할 수는 없는 형태로 주어졌지만 계산 과정에서 1*f(x) 로 바꾸어 부분적분하는 아이디어로 풀 수 있는 문제 처음엔 g'(1)은 3/2로 잘 구했는데 g(1)은 계산 못했는지 그냥 답을 3/2로 내버림 실제로 g(1)은 계산할 때 앞서 언급한 부분적분 테크닉을 사용해야 되는데 그걸 못 떠올리고, f(x)를 그냥 못 구한다고 판단해버린듯 그래서 힌트 주니까 g(1)도 e/2 - 5/6 로 잘 구해냄 28번 정답 : e/2 + ⅔ Gemini 제출: ⅔ (X) (최초 오답, 힌트 받은 후 정답) 미적 29번, 공비가 -½ 인거 구해내고 초항도 계산한 후에, 마지막으로 합을 구하고자 하는 수열의 부호의 주기가 4라는 걸 이용해서 계산하는 문제 초항/공비 부호에 따라서 케이스 잘 나눴고,공비가 -½ 인 거랑 초항이 5인 것까지 제대로 계산해냄. 근데 마지막에 수열의 합 구하는 과정에서 m 대신에 m-1 로 계산했고, 공비도 이상하게 ½ 로 집어넣어서 계산을 틀림 답은 1+3+5+7+9 = 25 가 나와야 하는데 1+2+…+11 = 66 로 구해서 오답. 참고로 이 문제는 o1한테도 물어봤는데 o1도 초항, 공비까지 잘 구해놓고 마지막 부분에서 계산 실수해서 틀리더라… 29번 정답 : 25 Gemini 제출: 66 (X) sinx = x 를 만족하는 x가 0밖에 없다는 거 이용해서 b = -2pi a 구하고, a = 1, 3/2, 2 나오는데 주기성 따져서 a = 3/2 인 거 구하고, f(x) 극대점 구하기 위해 f'(x)의 부호 판별하는 과정에서 sinx = -3/2 x - 3pi 를 만족하는 x들 찾아야 하는데 이건 그래프 그려서 구할 수 있는 문제 다 인간한테는 당연한 추론인데 현재 인공지능이 해내기 어려운 것들이기는 함 b = -2pi a 인 것(첫번째 추론) 까지는 해냈는데, (나) 조건에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해서 a = 3/2 를 못 구해냄 a를 못 구했으니 당연히 이후 과정은 나가리 이후 별도로 힌트 주니까 a = 3/2 인거 잘 추론해내긴 했는데,sinx = -3/2 x - 3pi 를 만족하는 x 값 찾는 과정에서 또 막힘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프 그려서 구할 생각을 할 텐데, 아직은수식적으로 구하려고만 하고 그래프 쪽 추론에는 약한 듯함 (나중에 멀티모달+추론이 되면 나아질 수도?) 30번 정답 : 15pi/2 Gemini 제출: 5pi (X) ----------------------------------------------------------------------------------------- 전체적으로 준킬러-킬러 문제들만 풀게 해봤는데 킬러 4문제(22, 28, 29, 30) 틀려서 점수는84점 이하지만, 추론 시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거 감안하면 시간 더 주면 22, 28, 29는 맞출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특히22, 29는 단순 계산실수) 왠지 모르겠지만 2분 동안 생각하라고 해도 이악물고 30-40초만 생각하더라 그리고 특이한 게 o1이랑 달리 문제 입력하면 생각 시간 같은 거 없이실시간으로 쓰면서 추론하는데, 이걸 보면Gemini-1114 자체가 추론이랑 수학 문제 푸는 데에 특화된 건 아닌 것 같긴 함. 특히 풀이과정 읽어보면 시간 제한 때문에 좀만 막히면 바로 제출해버리는 느낌이었음. 아무튼 불과3개월 전까지만 해도 간단한 계산도 못하던 거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니 곧 수능따위는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이 시리즈는 o1 정식이나 다른 추론 인공지능 나오면 계속 해볼 예정
타인존중작성일
2024-11-2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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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조종사가 권총쏘는 이야기
현대의 모든 군인들은 무장을 휴대하고 전투에 임하고 전투기 조종사라도 예외는 아님. 전투기는 그 자체로도 매우 강력한 무기체계지만 격추되면 알루미늄 관짝이 된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어서 이를 대비해 조종사들도 개인무장을 휴대함 조종사들이 본격적으로 총기를 휴대하기 시작한 것은 비행기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1차 세계대전부터인데, 1머전 극초기에 비행기는 폭격이나 제공권 장악이 아니라 단순한 포병 관측과 정찰을 위해 투입되었기 때문에 권총의 휴대 여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음. 그냥 들고나가고 싶은 사람만 휴대하고 나가는 정도? 하지만 비행기의 임무가 단순 정찰에서 CAS같은 근접항공지원이나 폭격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곧 지상군에게 비행기란 존재는 반드시 격추시켜야 하는 중요목표가 되었고, 이 성가신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는 저격수와 함께 사살 1순위가 되었음. 따라서 각국은 소총이나 야포, 그리고 대공포를 이용해 상대방의 비행기를 격추시키려고 했음. 이에 따라 격추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거나-혹은 자살하기 위한 권총이 조종사의 필수품이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조종사가 권총을 휴대하고 출격하기 시작했음. 조종사들이 휴대한 권총은 각국이 운용하던 제식 권총부터 조종사 개개인이 군에 입대하면서 가지고 온 사제 권총까지 다양했는데, 당장 조종사들이 입는 옷부터 통일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그럼. 사실 이당시의 권총은 생존용이라기보단 자살용에 가까웠음. 왜냐하면 1머전 초중기의 비행기는 너무나도 조약한 수준이라서 현대 기준에서 보면 모든 부분이 종이비행기 수준으로 형편없었음 방어력뿐 아니라 엔진 출력도 병신이라 전쟁 막바지인 1917년에야 100마력이 넘는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들이 등장했을 정도. 당시의 낙하산은 20kg가 넘었고, 조종사들은 20kg짜리 ‘짐덩이’ 대신 20kg어치의 탄약을 싣거나 기동성을 위해 낙하산을 내다버렸음 게다가 쌍팔년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낭만의 시대’였던 특성상 낙하산을 가지고 비행하는 조종사는 비겁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씹게이새끼로 여겨졌음.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이 ‘유능한 조종사는 낙하산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각국의 공군사령부는 조종사를 현재처럼 신경 쓰지 않았음. 아 물론 애초에 낙하산 자체를 조종사들한테 지급하지 않은 나라도 있었고 비겁하든 뭐든 조종사 살리는게 먼저라고 봤던 나라도 있었음 아무튼 간에 중요한건 당시의 항공기술은 매우 뒤떨어졌고, 이는 비행기의 생존성이 극히 떨어졌단걸 의미했음. 당시에 방염이란 개념이 존재할리가 없었기에 추락해서 찌그러진 비행기에 갇혀 산 채로 불타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런 상황에 처한 조종사 중 많은 이들은 편리한 해결책을 위해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1머전 종전 이후 항공기술력이 발전하며 조종사들의 복장과 항공기의 무장도 크게 달라졌음. 하지만 여전히 조종사를 포함한 군용기 승무원들의 개인무장은 권총 뿐이었음. 아 사실 권총 말고 다른걸 휴대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일본제국의 비행기 조종사들은 권총과 함께 일본도도 패용했음 격추당한 뒤에 반자이돌격이라도 하려했던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종사의 개인무장이 권총으로 제한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조종사에게 지급되는 권총은 적지에서 마주친 적과의 교전용이라기보다는 야생에서의 생존수단, 즉 유사시 동물을 사냥하거나, 적 민간인을 위협해서 삥뜯는데 사용하라고 지급되는 측면이 강했기에 굳이 좁은 항공기 내부에 거추장스러운 볼트액션식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쑤셔박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맞닥뜨렸던 전장은 2차 세계대전이었고, 그나마 ‘신사적이었던’ 서부전선이 아닌, 독일과 소련이 맞붙었던 동부전선이나 야만 그자체였던 태평양 전선에서는 적진에 낙하한 조종사를 잔인하게 사살하거나, 포로로 붙잡은 후에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음. 이렇게 되자, 조종사들은 동물들 사냥하라고 지급된 권총으로 최후의 교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렇게 M1911을 전자동으로 개조해서 들고다니기도 했음 하지만 권총을 쏴본 군붕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권총은 더럽게 안맞고 사정거리도 너무 짧으며 화력도 약함. 따라서 각국은 조종사만을 위한 생존용 총기 (Survival Rifle)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게 나치 독일의 M30 삼렬총과 미국의 M-4 서바이벌 라이플, 그리고 M-6 ASW임 우선 M30 삼렬총의 경우, 사냥광이었던 괴링의 입김 때문에 독일 공군에 채택되었음. 이렇게 알루미늄 상자에 분해된 채로 비행기 내에 보관되어 있었고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되었음. 여기에는 청소 키트, 12게이지 슬러그탄 20발과 12게이지 버드샷 20발, 그리고 9.3x74mmR 소프트 포인트 소총탄 20발이 동봉되어 있었는데, 소프트 포인트 탄환이 지급된 이유는 조종사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쏘면 당시 국제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정규군에 제대로 된 보급을 하기도 빠듯한 독일이 이런 고급 사냥총을 모든 항공기에 탑재하기에는 무리가 컸으며, 작동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다 나치 독일의 난잡한 생산체계 덕분에 단가가 매우 비싸졌음. 따라서 이 독특한 삼렬총은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단 2,456정만이 생산되었음. 생산된 총의 대부분은 공군 장교들이 사냥용으로 쓰거나, 사냥 매니아였던 헤르만 괴링이 자신과 함께 사냥을 즐기러 찾아온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사용했다고 함… 다음으로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제 2차 세계대전중 개발이 시작되어 1949년부터 미 공군에 납품되었던 22구경 볼트액션 소총이었음. 주 목적은 적과의 교전이 아닌 야생에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개인 호신용으로 쓰기 위한 용도였기에 상대적으로 저위력이고 반동도 약한 22.lr탄을 사용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 M265 22구경 사냥용 볼트액션 소총을 개조,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하고 무게절감을 위해서 목재 부품을 모두 제거했음. 따라서 소총치고는 가벼운 1.8kg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음 성능에 만족한 미군은 1950년까지 약 29,000정의 M-4 소총을 생산해서 배치했음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분명히 좋은 무기였지만 몇 가지 단점이 드러났음. 우선, 22.lr의 성능이 호신용이 아닌 사냥용으로써는 생각보다 그닥이라는 불만이 있었고, 또 총기 자체의 내구도가 너무 약했음. 따라서 1950년, 미 공군은 Ithaca Gun Company에 새로운 조종사용 소총 제작을 요구했음. T39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된 이 소총은 M-6 Aircrew Survival Weap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에 납품됨. 접히는 개머리판에는 9발의 22구경 탄환과 4발의 .410 산탄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조종사는 발사핀 선택기를 사용하여 총탄을 발사할 총열을 선택해 발사할 수 있었다고함. 또한 M-6은 주로 B-52, B-1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보급되었는데, 이들은 냉전 기간 동안 북극과 알레스카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방아쇠는 장갑을 착용하고도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음. 최대 사거리는 22구경 호넷탄을 사용할 경우 100m, .410 bore의 산탄을 사용할 경우 25m였음. 채택한 지 몇 년 후, 미국 조종사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M-6 ASW를 실제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임. 베트남군은 충분히 강했고, 결과적으로 미 공군은 큰 손실을 입었음. 조종사들은 때때로 낙하산을 타고 도망쳐야만 했고, 파라레스큐가 그들을 구출하거나-혹은 베트남군에게 붙잡힐때까지 그들 중 일부는 이 ‘서바이벌 라이플’을 사용해야만 했음 미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M-6 ASW는 훌륭한 총기와는 거리가 멀었음. .410산탄은 실제로 다양한 사냥감을 사냥하는 데 편리한 수단이었고, 곤경에 처한 조종사는 신선한 고기를 요리할 수 있었으나 베트남에서의 주요 위협은 굶주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게 문제였음. 조종사는 적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고,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M-6은 거의 쓸모가 없었음. 여분의 탄약 없이는 겨우 몇 발만 쏠 수 있었으며, 베트콩과의 교전에서 .22구경의 위력은 크게 부족했음. 결국 70년대에 이 총은 민간에 불하되거나 폐기되었고,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함. 이후에도 XB-70을 위해 개발되다 사업 자체가 망하고 M-6을 대체하지 못한채로 시제품 12정만 생산된 아말라이트 AR-5라든가 AR-5를 개량한 AR-7(이건 항공기 조종사용보단 민수용과 특수부대용으로 더 많이 팔렸음) 등이 등장했지만 정작 미군은 도입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공군이 도입해서 써먹었다고 함. 하지만 ‘조종사용 생존 총기’라는 마이너한 총기 특성상 모든 파일럿들에게 이러한 총기가 보급되지는 않았고,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음. 아래는 관련 조종사들의 증언임. ….(전략)….적대국가(여기서는 베트남)의 영토를 비행할 때는 그랬습니다. 해군은 저에게 스넙노즈 .38(길이가 3인치 미만인, 휴대하기 간편한 리볼버)또는 45구경 M1911을 지급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니면 원한다면 다른 권총을 사서 휴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동료가 9mm 자동권총을 직접 구매했습니다. (A-1 스카이레이더에 톱질한 산탄총을 휴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38을 선택했습니다. 여러 개의 AK-47이 저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에 대비해 최후의 저항을 하기 위해 권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해군 조종사, 베트남전 참전용사 홀스터에 넣은 .38 리볼버는 비행할 때마다 확인하고 복귀할 때 반납했습니다. 저는 항상 신호탄을 장전했는데, 주된 용도가 신호 보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의 영토에서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은 권총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전직 F-111 조종사 공군 조종사에게는 5발이 든 38구경 리볼버가 지급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똑똑하다면 AK-47과 맞서지 않기 위해서 즉시 내다버렸을 겁니다. -전직 F-4/KC-135 조종사 알래스카에서 비행할 때는 권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22구경이었 는데, 토끼와 뇌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을 때, 저는 38 스페셜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급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웃으며 아시아에서 육탄전을 하고싶진 않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무기라기보다는 장신구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더 안정되게 만들었습니다. -전직 F-86, F-100, F106 조종사,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용사 예전에는" S&W .38구경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조끼에 맞는 다른 물건도 휴대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는 알레스카에서 복무했습니다). 저는 보급계원한테 제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용 홀스터를 제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6발보다 14발을 쏘는 것이 더 나았고, 6발을 개별적으로 장전하는 것보다 탄창에 장전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입니다). 비행/탈출중에 스스로를 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총은 장전하지 않고 총알은 G-Suit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저는 그 무기를 어떤 종류의 자기 방어용으로도 고려한 적이 없고, 오히려 사출 후 하루나 이틀 동안 밖에 있어야 할 경우 먹을 작은 동물을 쏘는 용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다지 웃기지 않는 농담은 북극곰을 만났을 때를 대비해 마지막 한 방은 자살용으로 놔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극곰은 인간과 친하지 않으며, 권총으로 곰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공군 조종사 저는 1970-71년 다낭에서 VMFA 115의 RIO(무장관제사) 였습니다. 우리는 S&W 38을 지급받았습니다. 우리는 어깨용 또는 벨트용 홀스터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깨용 홀스터를 선택했는데, G 슈트가 벨트 홀스터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조종석에 M16이나 소드오프 산탄총을 몰래 넣었습니다. 탈출시 어떻게 가져갈 계획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비행대의 한 조종사는 거대한 대검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그가 탈출하게 된다면 다리가 잘리거나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전직 미 해병항공대 장교, 베트남전 참전용사 베트남 출신은 아니지만, 원래 브루클린 출신인 매우 괴짜이지만 성 격 좋은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를 알고 있는데, 그는 더 이상 전투기를 탈 수 없을 때까지 F-4 팬텀을 몰았고, 아랍 상공에서 격추될 경우를 대비해 항상 맞춤형 진주 손잡이가 달린 2인치 콜트 파이썬 357 매그넘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전직 미 공군 정비사. 저는 베트남에서 총을 휴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든 생존 키트를 대기실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고 모두 반환할 수 있었습니다. 총을 잃어버리면 FBI 수사를 받아야 하므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와 다른 사람들은 종종 권총을 휴대합니다. (공군은 짧은 M4 카빈총을 사출 좌석에 쑤셔넣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 동안 해군항공대의 두 친구는 개인용 개틀을 가지고 갔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걱정하는 친구나 친척이 총을 사거나 선물로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명은 새 9mm 베레타를 선물받았고, .380 리볼버를 선물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많은 항공 승무원은 수류탄을 포함한 다양한 무기를 휴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분의 무게를 여분의 생존용 식량이나 무전기 배터리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베트남 민병대나 북베트남군과의 총격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한 RA-5C 조종사는 .25 hideout을 꺼내 헬기가 들어오는 동안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한 두 명의 NVA를 쏘았고, 그는 구출되었습니다. -전직 미 해군항공대 장교 저는 1970년 첫 임무로 태국에서 B-52를 조종했고, USAF의 제식 권총인 .38구경 S&W 리볼버를 받았습니다. 100m에서 6번 중 6번은 표적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저는 육군 예비역 동료들에게 제 첫 사격이 M1 Garand였다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워했는데, 육군이 최소 1950년대 중반에 이 무기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65년에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때까지 공군은 이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가기 전에, 저는 고등학교 때 권총으로 유타와 네바다에서 토끼를 사냥하곤 했는데, .357매그넘 리볼버와 .44구경 리볼버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38구경 리볼버를 다루는 것은 저에게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전투 임무중에 저는 USAF에서 보급한 .38구경 S&W 리볼버를 비공식적으로 테스트했고 근거리에서 텔레비전 화면과 같은 얇은 표적을 관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 USAF가 여전히 사용 중인 오래되고 약한 리볼버를 보완하기 위해 .38의 작약량을 낮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군이 알루미늄 실린더가 달린 .38 초경량 “에어크루” 리볼버를 1,000개 이상 구매했기 때문에 이 탄약 [약장탄을 말하는듯?]을 구매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리볼버는 표준 .38 스페셜 탄약을 사용하면 폭발하는 성가신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쉽게 두개골이나 뼈에 튕겨져 화가 난 채로 피흘리는 적을 남겼습니다. 첫 번째 파병 동안 B-52에 있을 때는 약한 .38이 괜찮았는데, 대부분 적 지대공 미사일의 사거리를 넘어서 날았고 격추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52가 홍강 계곡과 하노이/하이퐁 지역으로 이동한 후, 지대공 미사일과 MiG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것은 2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더 나은 총을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는 B-52가 아닌 팬텀이었습니다. 저는 약 2개월 동안 비행기와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은 부대에 갔습니다. (1972년 부활절 공세 직후, 미 공군이 다시 북쪽으로 진군했을 때). 그래서 호신용 무기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44 Automag 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44구경 자동권총은 F-4용 G-Suit와 함께 착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단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상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가지고 다낭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항상 권총을 편안하게 사용했고 항상 100m 근처에서 맞닥뜨린 적을 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비행한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지역에 대한 철학/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베트남의 홍강 계곡과 같은 거주 지역에서 격추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논에서 저를 구출하러 오는 민병대와 북베트남 군인들에게 항복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면 그게 해야 할 일이었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살아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심하게 구타당하긴 하겠지만-일단 살아는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라오스의 호치민 루트에서 격추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베트남 군인들이 그 지역을 통제했으며, 평화 협정에 사용할 “포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하노이의 감옥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치민 루트 밖에서 라오스에서 격추되었다면, 그것은 더 미묘했습니다. 주된 목표는 구조대가 헬리콥터와 A-1 또는 A-7로 나를 발견할 때까지 숨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놈들에게 발견되면, 총을 쏘고 도망가서, 당신과 그들 사이에 최대한 거리를 둔 다음,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100m 밖으로 따돌리고 엄폐할 수 있다면, 저는 대다수가 AK로 그 사정거리에서 저를 맞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저는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캄보디아—잊으세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메르 루즈의 손에 사라진 모든 서양인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 선택은 숨는 것이었지만, 불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총을 쏴댈 생각이었습니다. 남베트남은 라오스와 비슷했습니다. 대부분의 적의 통제 지역은 NVA(북베트남군)가 운영했습니다(베트콩 게릴라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그들의 지역에는 포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서 잡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옵션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제 9mm 하이파워에 탄창 1개를 넣고 베트남 전역에서 150회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고, 착용한 GI 웹 벨트 앞쪽에 여분의 탄창 6개를 장착했습니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될 경우, 추적탄이나 플레어탄을 섞어서 약 60발이 든 .38을 장착했습니다. 38구경 탄약은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연습하고 휴대할 수 있는 탄약이 많았지만, 9mm는 구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또한 CIA 요원을 통해서 9mm ‘Swedish K’ 기관단총 (칼 구스타프 M/45) 2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낭에서 자주 공격을 받았고, 라오스 국경에 가까운 태국 북부의 기지에서도 두 번 더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후치 건”(무슨 총을 말하는지 모르겠음)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종석에 M/45 기관단총을 한두 번 실었지만 .44 AutoMag처럼 항상 방해가 되었습니다. 지휘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무전망에서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오스에서 비행하는 FAC(전선통제관)인 USAF 소령이 추락했고 Pathet Lao(라오스의 좌파-친베트남 무장단체)가 그를 쫓아와 총을 쏘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를 살아서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1시간 이상 적과 싸웠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에게 그가 입은 모든 상처와 그를 사냥하던 소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성공했는지를 보고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파라레스큐를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그는 이미 몇 발을 맞은 상태였다고 했고, 다음날 무전으로 그가 죽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사령관은 그를 살려내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을 들었습니다. 한가지 기괴한 이야기는 Pathet Lao에 의해 포로로 잡혀서 파리 협정 당시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USAF와 NAF 승무원(350명 이상—다른 이야기입니다)은 결국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소령은 CAR-15(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짧은 M-16)와 일종의 반자동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태국 북부에 있는 제 F-4 비행대의 다른 이들은 .45구경 M1911과 .357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고, 와이오밍 출신의 친구 한 명은 7인치 총열을 가진 Colt .45 싱글액션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본 가장 특이하고 부러웠던 총은 베트남에 가기 전에 만났던 한 지휘관이 가지고 다닌 것인데, 바로 일체형 소음기가 장착된 .22 Ruger 반자동 권총이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받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테러 지역을 비행하는 모든 항공 승무원은 조종석에 가장 크고 최고의 무기를 휴대하고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현재 우리의 적들은 제네바 협약을 존중하지 않으며 체포되는 일은 드뭅니다. 체포되면 다음에 일어날 일은 총격을 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 것입니다. -전직 B-52, F-4 조종사, 걸프전-베트남전 참전용사 보면 알겠지만 거의 모든 조종사들이 단순하게 권총만 휴대하고 다녔단걸 알 수 있음. 이후에도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특수한 서바이벌 라이플보단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던것 같음. 하지만 2010년대에 상황이 다시 변하게 되는데 이새끼들 때문임 전세계가 위아더월드로 ISIS를 공습하는 와중에 격추된 조종사가 제대로 된 포로대우를 받을리가 없었고 이는 곧 붙잡힌 요르단군 조종사가 끔찍하게 화형당하며 현실이 됨 이에 기겁한 네덜란드 공군은 공습에 참여하는 자국군 조종사들한테 MP9 기관단총을 홀스터에 넣어 휴대하게끔 했고 시리아 반군과 ISIS에게 자국군 조종사가 맞아죽는걸 본 러시아군도 조종사에게 20발짜리 스테츠킨 기관권총과 다량의 탄약을 휴대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AK-74S같은 기관단총을 쥐어줬음. 근데 걍 권총 하나만 심플하게 휴대하는 경우도 있는거 봐선 여기도 조종사마다 케바케인듯 미 공군의 경우에는 3점사형 M-4에 착탈식 총열, 접이식 권총손잡이 장착 등의 개량을 거친 GAU-5 ASDW (Aircrew Self Defense Weapon) 를 2018년부터 도입했는데, ACES II 사출좌석 내부 공간에 이렇게 접어서 수납한다고 하며 현재까지 약 3천정 정도가 A-10, B-1, B-2, B-52, F-15C/D/E, F-16, F22 파일럿들한테 지급되었다고 함. 참고로 F-35는 US16E라는 새로운 사출좌석을 장착해서 GAU-5의 수납이 불가능하기에 권총을 지급한다고 여담으로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경우 전투기보단 상대적으로 공간이 넉넉하고 추락했을때 적 보병과 맞닥뜨리기 쉬웠던 탓에 XM177같은 카빈을 가지고 타거나 아예 M-16같은 소총을 휴대하기도 했으며 아니면 그냥 권총만 가지고 다니기도 했음. 러시아군의 경우도 AKS-74U같은 기관단총을 휴대하거나 현재도 미국이나 영국의 헬기 조종사들은 M-4나 SA-80을 조종석 옆에 부착해놓음. 한국 공군과 육항대의 경우에는 K-5 권총과 S&W 38구경 리볼버를 조종사 개인무장으로 지급하고 있음.
하메스작성일
2024-11-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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