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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논리에 대한 몇 가지 반론(1)

가자서 작성일 12.10.24 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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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논리에 대한 몇 가지 반론(1)  [늙은도령님 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복지, 교육 등과 같은 긍정적인 부문에 들어갈 자원이 형벌 제도와 사법 체계에 투입된다.

 

결과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 기회균등이란 너무도 먼 이야기다.

 

                                                                   -  <평등이 답이다> 중에서.  

 

 

 

몇 달 전에 기본소득제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고, 많은 분들이 이 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하시면서 좋은 글들을 올리고 있어 제가 숟가락 올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찬성하시는 분과 반대하시는 분들 사이의 토론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헌데 찬성하시는 분들의 논리에 비해 반대하시는 분들의 논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오류를 드러내고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반론이 필요한 것 같아 몇 가지 점에서만 논쟁에 끼어들려 합니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첫 번째 반대논리는 세원 마련이 가능하냐는 것인 것 같고, 두 번째는 이 정책의 최종 수혜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것이고, 세 번째는 부작용에 대한 것으로 보이며, 댓글들을 보면 이 정책이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의 정책이냐 하는 것이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독일처럼 기본소득제를 부분적으로 시행 중인 국가들처럼 한국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있냐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이런 반대논리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에 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반대논리인 세원 마련 문제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이해하려면 기본소득제가 왜 나왔느냐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진보와 성장 정책은 규모를 키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스펜서, 데카르트, 칸트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연을 인류가 사용해 진보와 성장을 위해 쓰일 기본적인 재원으로 이해한 이래, 인류는 천연자원을 효율적으로(20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마구잡이로) 이용해 인간의 부의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특히 산업혁명과 국민국가의 확립, 자유 시장 및 자유 무역의 등장, 거대기업을 위한 조직론과 경영학의 발전, 전문 관료제의 강화와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 금융산업의 거대화 등으로 인류는 지난 300년간 만에 무려 37억년에 이르는 지구의 역사가 만들어낸 천연자원을 고갈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를 초고속으로 이루어냈습니다.

 

헌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그 성장의 이면에서 지구 생태계는 종말을 걱정할 만큼 악화됐고, 석유처럼 인류 성장의 원천들이자 미래 세대의 것이기도 한 천연자원의 소비가 2007년을 이후로 지구라는 행성이 버텨낼 한계점을 넘어섰습니다.

 

그 결과 지구의 온도를 생명들이 살기 좋은 기온으로 유지시켜주는 북국과 남극의 얼음이 줄어들고, 태양에서 방출된 자외선 등을 걸러주는 오존층이 파괴되고, 생존의 필수인 산소를 공급하는 아마존 같은 지구의 허파들은 무서울 속도로 줄어들고, 해양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생산 공정의 비약적인 발전과 전자 및 정보통신 등 각종 첨단기술의 발전은 경제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도, 행복의 증진과 인류 전체의 삶의 질 향상과도 연계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이는 인류의 미래세대까지 누려야 할 지구라는 환경을 파멸의 수준까지 파괴하면서도 그 경제적 과실이 일부에만 집중됨을 의미합니다.

지구 환경의 파괴는 모든 인류가 감당해야 할 일이어서 파괴의 결실을 맞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파괴의 주범들은 모든 것들을 독점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갖는 것은 물론,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과학기술까지 독점하는데, 99%에 이르는 사람들은 그 거대한 피해의 책임을 똑같이 나누어 책임져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특히 다양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던 지구라는 존재가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견으로는 유일무이한 행성이라는 것이 입증된 현실에서, 당연히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아야 할 미래세대는 갈수록 나빠지는 지구의 환경을 물려받아야 하니 이런 불공평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결국 현재의 인류가 구축한 정치경제 시스템은 결과의 평등은 물론 부의 대물림으로 기회의 평등까지 제한하기 때문에, 그 추세를 그대로 나두면 부와 권력의 독점이 ‘1% 대 99%’를 넘어 ‘0.01% 대 99.99%’까지 치달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이처럼 인류가 채택해온 진보와 성장의 패러다임이 극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어기 때문에, 칼 폴라니의 지적처럼 스스로 자신이 살아갈 지배적 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들이 보편적 복지를 들고 나왔고, 가장 전향적인 기본소득제까지 연구, 도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각종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기회의 평등은 물론 결과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갈등, 폭력, 범죄, 건강, 비만, 탐욕의 원천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인류 진보와 성장의 역사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더 가져가는 것이 개인적 노동이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초월하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강제적으로라도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인류는 종말에 이를 것이라는 생존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이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제를 불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세원은 인류가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지구라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자원을 독점하고 남의 기회를 가로채(그것을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결과는 같다) 극도로 불평등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재산(소득과 자산 공히)에 합당한 세금을 누진적으로 물리면 됩니다.

 

아울러 생태세나 기후세, 탄소배출세, 금융거래세(파생상품 포함)처럼 성장의 대가로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할 사회세를 신설해 기본 재원을 만들고, 천문학적으로 탈루되거나 해외로 도피되는 자금을 추적해 세금을 징수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특히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들어가는 화학약품과 세금, 장비와 인력이 줄어들고, 미국이 반대해 실패한 탄소배출세를 기업과 개인에게 부과하고, 아울러 파생상품 거래만 4경에 이르는 금융 거래에 0.1~0.2%에 이르는 토빈세만 부과해도 백 조에 이르는 재원이 마련됩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대학 하나 세울 때 교도소가 25개씩 생겼듯이 범죄가 줄면 그곳에 들어가는 엄청난 세금이 대폭 줄어들고, 국민들의 건강이 좋아지면 의료보험이나 기타 용도에 소비되는 세금도 줄어듭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발전이 성장에 따른 피해는 전 인류에게 부과한 채 그 과실만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을 몰아준 역사라면, 그것 중에서 일부라도 떼어내 절대 다수에게 나누어 줘 모든 문제의 근원인 불평등을 줄이자는 것이 보편적 복지와 기본소득제의 목적입니다.

 

인류 전체의 부가 총 인구의 증가 대비 수십~수백 배는 더 커졌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제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는 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목적과 정당성에 동의한다면 재원 마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수백억 원 이상의 돈이 왜 필요합니까? 

그것은 개인의 노동력에 비해 수천 배에 이르는 수입을 독점하는 것도 모자라, 자식에게 대물림 함으로써 권위와 영향력,명성의 영원함을 추구해 그들만의 탐욕의 제국을 영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반대논리는 기본소득제의 최종 수혜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반대논리를 주장하시는 분들께서는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거의 대부분 소비에 쓰이기 때문에 결국은 삼성이나 LG 같은 재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헌데 이런 지적은 기본소득제에 대한 이해부족을 넘어 다양한 인간의 성향을 오직 물질적 기준으로만 보는 편협한 논리에서 나옵니다.

 

국민 모두에게 매월 일정 금액이 주어진다고 해도 각각이 처한 환경과 성별, 나이, 계층, 사회, 건강 등등에 따라 필요와 욕구에 따라 사용처와 방법, 우선순위 등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5천만 국민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완벽히 똑 같은 처지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 복지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연구 및 조사의 면에서나, 조직 운영의 자금 면에서나 불가능합니다.

 

결국 각자의 환경과 필요가 다른 상황에서 부와 권력 면에서 불평등한 위치로 내몰린 절대다수의 국민을 이런저런 기준으로 나누거나 선별하는 것보다, 아예 모든 국민의 통장으로 직접 넣으면 각각의 개인들이 필요의 우선순위에 따라 기본소득을 사용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본소득의 사용처가 다양화해지기 마련이어서 재벌들에게 최종 이익이 독점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몇 십 배 이상 기본소득의 사용이 다양화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사용결과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도 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기업(자영업자 포함)들도 환경 파괴를 유발하는 사업보다 전체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쪽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밖에 없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정 소득이 보장되는 국민들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 특히 기본소득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경제적 문제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적극적이게 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정부도 기본소득제를 유지하기 위해 조세 정의 실현에 집중할 것이고, 정치인들도 국민적 눈높이에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국가의 불평등 지수가 낮아지면 노동시간도 단축되고 건강도 좋아지고 범죄도 줄고 개개인의 삶의 질도 높아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위헌 정책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존의 특권층들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민들이 기본권이 확대되는 기본소득제에 반대하는 것이지요.

국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특권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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