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과학의 진보와 발전은 갈수록 심화되는 탈종교를 가속시키며 오늘날 대중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좀더 대중친화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토록 완고했던 카톨릭은 관대함을 어필중이고 불교는 현실의 조언자로서 입지를 강화중입니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면서 시대를 역행하는 모순을 보여주는것는 개신교의 모습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심지어 카톨릭은 성직자의 결혼 허용까지 논의했음은 그만큼 다가올 미래에 느끼는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카톨릭이나 불교는 아무리 시대가 변화해도 종교적 순수성을 바탕으로 대중성을 가지고 나아가야하는 모순적이면서도 어려운 현실이 양대 종교의 최대 난적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대중친화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인 개신교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목회자의 수급이 용이하고 세속적이기에 가장 생존에 강점입니다.
그럼에도 최대의 강점이 희석되는것의 중요 요인은 다름아닌 대형교회의 존재입니다.
과거 종교가 가졌던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고 다른 대체제가 나타남으로 많은 기능적인 부분을 상실중이고 그 위치는 갈수록 줄어들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장점은 기존의 양대 종교와 다른 좀더 현실적인 조언자로서 기능을 특화시킬수 있고 그것은 다른 종교가 따라올수없는 독보적인 강점임에도 전혀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신앙에 몰두하는 고독한 수도자같은 신부나 스님들에게 우리가 겪는 가정의 문제나 현실적인 고민을 공감하는것에 한계를 가질수있지만 목사들은 우리와 비슷한 문제들 좀더 깊이 공감할수있습니다.
카톨릭이 성직자의 결혼문제에 불가한것은 그 종교적 순수성이 그들의 정체성이자 상징이기에 불가능합니다.
목사들은 우리처럼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며 세속적인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좀더 종교적 올바름에 가치를 부여한 사람이라는 특별하지않은 포지션 그것이 최대의 장점입니다.
현재에는 그 세속적 가치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현실에 가장 가까이에서 신앙을 이끌어야할 존재에서 오히려 특별한 존재로서 이미지를 만들고 부여함으로 몰락의 불씨를 키웠습니다.
본인은 목회자들을 성직자라고 부르지않습니다.
친척분중에 목사가 있어서 그것에 물어본적이 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신앙자체에 인생을 건다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숭고한 자기희생인 사람만이 성직자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존재가 되어선 안되는것은 그러면 굳이 교회를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어부터 라틴어에 히브리어까지 섭렵하는 식자계층인 신부들과 목사의 갭차이는 메꿀순 없습니다.
좀더 심화된 교리나 신앙적 해석이 필요하다면 굳이 교회가서 목사의 설교가 필요한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서 편의점만큼이나 치킨집보다 많은 수많은 교회의 존재와 쉽고 간략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서 교회의 존재가 부각되는것이라 성당과는 비교할순 없습니다.
대형교회의 존재는 이러한 과도한 출혈경쟁속에 소수만이 모든 부를 독식하는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하지않은 존재의 목사가 사이비 교주가 되어야하고 신의 지상대리자가 되어야하는 이유가 대형교회라는 괴물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신도와 금전이라 볼수있습니다.
지금 작은 개척교회지만 최종 테크트리가 대형교회라는것이 목사들에게 기이한 목표의식을 탄생시켰습니다.
사회의 갈등을 중재하고 완하시키는 중재자로서 포지션을 만들어야하는 개신교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혼란을 야기시키는것은 그들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른 것을 부각할려는 행태입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건물을 볼때마다 그 건물이 더욱 높이 올라갈때마다 그 수많은 건축비가 차라리 선행에 쓰였다면 운동장에 천막만 치고 설교해도 거대한 운동장을 충분히 메우고 남았을거라 느낍니다.
하지만 카톨릭처럼 직영점이 아닌 자영업 형태인 교회는 목사의 수완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이 극명하기에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의 중요성과 자극적이고 화려한 수사가 필요해지는건 당연합니다.
목사의 언변이 화려해질수록 그 수사가 휘황찬란할수록 높아지는 교회의 거대함속에 서서히 사회적 인식과 이미지는 추락하며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되는 많은 사람들과 현실의 어려움에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가져다 주는 종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에 휩싸인 빛을 잃어버린 중세의 암흑속에도 민중에게 삶의 원동력이자 희망을 가져다준 종교의 중요성이 세월이 변해 그 모습과 형태가 바뀔지언정 인류의 역사에 계속 이어지리라 느낍니다.
온갖 부정적 이미지속에 몰락하는 개신교의 추락이 안타까운것은 잘할수있는 잠재력과 에너지가 인간의 욕망위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더렵혀지는 모습은 절대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어린시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으면서 아무리 르네상스시대지만 이 작품이 출판되었다는것에 경악했습니다.
카톨릭의 부패와 몰락속에도 시대에 살아남았던건 이러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이 사고와 그것을 용기를 가지고 말할수있었던 신념이 오늘날 카톨릭을 존속해온 잠재력이었습니다.
하루빨리 개신교가 정상화되길 바라며 신자분들에게 다소 불편하셨다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이렇게 교회가 몰락하기보다 정상화되길 바라는 입장입니다.